Categories
Book ETC

외재하는 강박

복도훈은 ⟪유머의 비평⟫에서 서효인의 시집 ⟪여수⟫에 수록된 몇 편의 시에 가해진 자기검열1이윤주, “내 문학 작품 속 여혐 수정” 새 풍경, 한국일보, 2017.02.23.이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지만, 시집을 읽고 나서는 수정 이전과 이후의 표현을 비교해 볼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다.

그러나 시인의 말을 빌리면 “온갖 곳에 염결성과 예민함을 드러내면서 하필 방종했던” 방식으로 자신의 시에 드러나게 된 여성 혐오적인 표현을 삭제하거나 수정한 부분이 막상 내가 『여수』를 읽을 때는 크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2복도훈, ⟪유머의 비평⟫, 도서출판b, 40.

시인이 언론에 밝힌 바에 의하면, 시 〈서귀포〉에서 ‘궁둥이’를 ‘몸 어딘가’로 바꾸었고, 또 다른 시에서는 ‘여공’을 ‘젊은이’로, ‘아줌마’를 ‘학부모’로 바꾸었다.3이윤주의 같은 기사, “최근 세 번째 시집 ‘여수’를 출간한 서효인 시인은 작품에서 ‘여성혐오’가 엿보이는 시어를 고치거나 다시 썼다. 시 ‘구미’에서 ‘공장에 다니는 여공들’을 ‘공장에 다니는 젊은이들’로, 시 ‘마산’에서 ‘우리가 모두 아줌마가 되면’을 ‘우리가 모두 학부모가 되면’으로 바꾸는 식이다. 시 ‘서귀포’에서 제주 4ㆍ3항쟁을 회상하는 표현은 발표 당시 ‘젊은 남자는 섬 말 쓰는 아녀자를 잡아서 궁둥이 사이에 대검을 꽂아 넣었다’로 썼지만, 이번 시집을 묶으며 ‘미아들은 섬 말 쓰는 사람들을 잡아다 몸 어딘가에 대검을 꽂아 넣었다’로 바꿨다.” 의미는 알겠는데, 과연 시인이 수정한 표현이 이전의 작품보다 현재의 작품을 더 낫게 만들었을까?

자극적인 표현을 덜 자극적인 표현으로 바꾼다고 폭력이 줄어들 것으로 믿는 것은 ‘민간인 살상’을 ‘부수적 피해’로 바꿔 부른다고 민간인 살상이 줄어든다고 간주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정치적 올바름’의 언어검열이나 완곡어법은 언어의 해방이 아니라 언어의 감옥이 될 공산이 농후하다. 그것은 정신분석적 의미에서 무의식적인 억압-검열보다는 상처와 폭력에 대한 체계적인 ‘부인verneinung’에 가깝다. 그것은 단지 덜 자극적이고 덜 불쾌한 표현의 규칙과 예시를 만들고 그 규칙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해 넣는 일을 선호할 뿐이다.4복도훈의 같은 책, 43.

히스테리 환자는 거짓말의 형태로 진실을 말한다. 그가 말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사실이 아니지만, 거짓말은 거짓된 형태로 진정한 불만을 표현한다. 반면 강박증 환자의 진술은 문자 그대로 사실이지만, 그 진실은 거짓말을 위한 진실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종종 히스테리를 포퓰리즘에, 강박증을 정치적 올바름에 빗댄다. 포퓰리즘은 거짓말의 형태로 진실을 말한다.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거나 해결이 불가능한 방식으로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 거짓이 실제로 존재하는 분노와 불만을 건드린다. 반면 정치적 올바름은 진실로 거짓말을 한다. 차별과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언어를 바꾸고 상징적 질서에 규칙을 추가하지만, 정작 사회경제적인 수준에서 근본적인 차별, 불평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지젝은 정치적 올바름을 대리수동성으로 묘사한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바꿔 나가자. 그래야 전체적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수 있다!”5슬라보예 지젝, “Repeating Lenin“, lacan.com 복도훈도 유사한 의미의 다른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그것은 문제를 살아있게 하기 위해서 자꾸만 새로운 답을 내놓는다.”6슬라보예 지젝,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411.

이런 강박은 정치적인 지형 안에서 고압적으로 표출된다. 지젝은 자유주의 엘리트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정치적 무지와 혼란, 맹목을 꾸짖고 모욕하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들을 고압적으로(patronizingly) ‘이해’한다고 비판했다.7슬라보예 지젝, 앞의 글. 강준만은 “나는 기본적으로 PC 운동의 취지와 당위성엔 동의와 지지를 보내면서도 동의와 지지를 보낼 뜻이 있는 사람들까지 등을 돌리게 만드는 운동방식의 문제엔 비판적인 입장”이라고 밝힌바 있다. “PC운동이 애초에 인간에 대한 예의에서 출발한 것임에도 어떤 사람들이 그 예의를 지키지 않거나 소홀히 대한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너무 거친 비판을 퍼부음으로써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 건 모순”이라고 했다.8강준만, ⟪정치적 올바름⟫, 인물과사상사, 30.

작가와 작품의 분리라는 주제에서도 유사한 강박을 본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수십 년 동안 노벨문학상 후보 명단에 올랐으나 끝내 수상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9노벨문학상은 종종 납득하기 힘든 이상한 선택들을 하는데, 정치인인 윈스턴 처칠, 포크싱어인 밥 딜런에게 상을 준 일도 그렇지만, 20세기 초부터 내내 이어져 온 어떤 정치적 강박이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게된다. 그가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에게 훈장을 받았기 때문에 노벨문학상에서 멀어졌다고 보는 의견이 많은 것 같다. 그를 심지어 반공주의자라고도 얘기하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정치에 소극적인 보수주의자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는 유전적으로 시력이 좋지 않았다. 아버지와 할머니도 일찍이 시력을 잃었고, 본인도 국립도서관장에 취임한 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눈이 멀기 시작했다. 이후 30년 이상을 어둠 속에서 살았다. 그는 그가 자주 묘사한 이미지처럼 중심이 없는 미로 속을 더듬으며 “부유하듯” 살았으며, 누군가 대신 읽어줘야 하는 책으로 가득한 도서관이 그의 세계였다. 세상은 수수께끼였고 그는 그 점을 경이롭고 다행스럽게 여겼다. 그에게 정치적이기를 요구할 수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피노체트에게 훈장을 받다니 심하긴 했다. 하지만 그러한 결함을 그의 실존적 맥락이나 그가 평생 추구해 온 문학적 맥락을 무시한 채, 그저 그의 윤리적인 결함으로 단정할 수 있는 걸까?

마침 프랑스의 사회학자 지젤 사피로가 쓴 흥미로운 제목의 책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를 소개하는 한겨레 기사가 맥빠지지만 불가피해 보이는 결론을 요약하고 있다.

그렇다면, 작가와 작품은 분리할 수 있는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자칫 허탈하게 들릴 수도 있는 결론이지만, 이 질문에 대해서는 결코 단순하고 결정론적인 답변이 가능하지 않으며, 사안에 따라 꼼꼼하고 합리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진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재적 분석과 외재적 분석이 모두 필요하고, 문제가 있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검열이나 ‘삭제’보다는 경고 문구를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출판사 팬 맥밀란이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2023년에 재발간하면서 이 책이 ‘인종 차별적’이고 ‘유해하다’고 밝힌 것이 참조할 만한 사례다.

footnote
  • 1
    이윤주, “내 문학 작품 속 여혐 수정” 새 풍경, 한국일보, 2017.02.23.
  • 2
    복도훈, ⟪유머의 비평⟫, 도서출판b, 40.
  • 3
    이윤주의 같은 기사, “최근 세 번째 시집 ‘여수’를 출간한 서효인 시인은 작품에서 ‘여성혐오’가 엿보이는 시어를 고치거나 다시 썼다. 시 ‘구미’에서 ‘공장에 다니는 여공들’을 ‘공장에 다니는 젊은이들’로, 시 ‘마산’에서 ‘우리가 모두 아줌마가 되면’을 ‘우리가 모두 학부모가 되면’으로 바꾸는 식이다. 시 ‘서귀포’에서 제주 4ㆍ3항쟁을 회상하는 표현은 발표 당시 ‘젊은 남자는 섬 말 쓰는 아녀자를 잡아서 궁둥이 사이에 대검을 꽂아 넣었다’로 썼지만, 이번 시집을 묶으며 ‘미아들은 섬 말 쓰는 사람들을 잡아다 몸 어딘가에 대검을 꽂아 넣었다’로 바꿨다.”
  • 4
    복도훈의 같은 책, 43.
  • 5
    슬라보예 지젝, “Repeating Lenin“, lacan.com
  • 6
    슬라보예 지젝,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411.
  • 7
    슬라보예 지젝, 앞의 글.
  • 8
    강준만, ⟪정치적 올바름⟫, 인물과사상사, 30.
  • 9
    노벨문학상은 종종 납득하기 힘든 이상한 선택들을 하는데, 정치인인 윈스턴 처칠, 포크싱어인 밥 딜런에게 상을 준 일도 그렇지만, 20세기 초부터 내내 이어져 온 어떤 정치적 강박이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게된다.
Categories
Book

주체의 분리

블랑쇼에 관한 글을 읽다가, 데리다가 블랑쇼의 짧은 단편 《내 죽음의 순간 L’instant de ma mort》에서 일어나는 주체의 분리에 관해 주목하고 그에 관한 강연을 했음을 알게 되었다. 블랑쇼의 단편은, 1994년 노년의 블랑쇼가 50년 전의 자신(어떤 ‘젊은이’)이 1944년 까엥(Quain)에서 경험한 죽음의 순간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국내에는 아직 출판된 바 없는 듯하여, 영문판을 찾아보고 한국어로 옮겨 봤다.


나는 한 젊은 남자를 기억한다 — 아직 젊음을 간직한 한 남자. 죽음 자체에 의해, 그리고 어쩌면 불의(不義)의 오류로 인해 죽음을 면한 남자였다.

연합군은 마침내 프랑스 땅에 발을 디뎠다. 이미 패배한 독일군은 무의미한 잔혹함으로 허망한 저항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 대저택 — 사람들은 그것을 ‘성(城)’이라 불렀다 — 그 문이 조심스럽게 두드려졌다. 나는 그 젊은 남자가 문을 열어, 도움을 요청하러 온 낯선 방문객들을 맞이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날카로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모두 밖으로 나와!”

한 나치 장교가, 너무나도 유창한 프랑스어로 명령했다. 그는 가장 연로한 이들을 먼저 내보내고, 이어서 두 명의 젊은 여인에게도 같은 명령을 내렸다. “나와! 나와!” 이번엔 그의 목소리가 더욱 사나워졌다. 그러나 젊은 남자는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마치 사제가 제단으로 나아가듯 묵직한 걸음으로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장교는 그를 거칠게 흔들어 깨우며, 땅에 흩어진 탄피와 총알을 가리켰다. 분명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것이다. 이곳은 더 이상 평온한 터전이 아니라,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그 순간, 장교는 알 수 없는 언어로 목이 멜 듯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이미 한층 늙어 보이는 남자의 코앞에 탄피와 총알, 수류탄을 들이밀며 또렷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것이 네가 만들어낸 결과다.”
나치 장교는 부하들을 정렬시켰다. 그들은 규율에 따라 인간이라는 표적을 향해 조준했다. 그 순간, 젊은 남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적어도 제 가족만이라도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 그렇게 해서 아주 느리고도 긴 침묵의 행렬이 형성되었다. 먼저 아흔네 살의 고모, 그리고 비교적 젊은 그의 어머니, 이어서 그의 누이와 제수까지. 마치 모든 것이 이미 끝난 듯한 고요 속에서, 그들은 조용히 실내로 돌아갔다.

나는 알고 있다 — 나는 정말로 알고 있다 — 이미 독일군의 총구가 그를 겨냥하고, 최후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 순간, 그가 갑자기 놀라운 가벼움을 느꼈다는 것을. 그것은 일종의 황홀경이었을까? 그러나 결코 행복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환희? 아니면, 죽음과 죽음의 만남 그 자체였을까?

내가 그의 입장이었다면, 굳이 분석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그 순간 갑자기 무적이 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죽었으나 — 불멸한 존재. 어쩌면 그것은 황홀경이었을까. 그러나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통받는 인류에 대한 연민, 그리고 영원하지 않음에서 오는 기쁨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죽음과 은밀한 우정을 맺었다.
바로 그 순간 — 현실로의 갑작스러운 귀환. 가까운 곳에서 치열한 전투의 굉음이 폭발했다. 저항군 마키(Maquis)의 동지들이 그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알고 구출 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중위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그러나 독일군 병사들은 여전히 정렬된 상태로 멈춰 서 있었다. 그들은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침묵 속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병사들 중 한 명이 다가왔다. 그리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독일인이 아니다. 러시아인이다.” 그리고 묘한 웃음을 띠며 덧붙였다. “블라소프 군대다.” 그 병사는 손짓으로 그에게 사라지라고 했다.

나는 그가 여전히 가벼움의 감각 속에서 멀어져 갔다고 믿는다. 그는 결국 먼 숲, ‘히스 숲(Bois des Bruyères)’에 도착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익히 아는 나무들 사이에 몸을 숨겼다. 그렇게 빽빽한 숲 속에서 한참이 지난 후, 문득 현실 감각이 돌아왔다. 사방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농가들은 불타고 있었다. 불길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모든 것이 타오르고 있었다. 조금 후 그는 알게 되었다. 세 명의 젊은이들이 — 농부의 아들들로, 전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던 이들이 — 오직 젊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길 위에도, 들판에도 부풀어 오른 말들의 시신이 널려 있었다. 그것들은 이 전쟁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를 침묵 속에서 증언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던 것일까? 나치 중위가 돌아왔을 때, 그는 젊은 성주의 실종을 깨달았다. 그런데도 어찌 된 일인지, 분노와 격노가 성을 불태우는 쪽으로 향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성(城)’이었기 때문이다. 성의 정면에는 한 해가 새겨져 있었다. 1807. 그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을까? 그 해는 예나(Jena) 전투가 벌어진 해였다. 나폴레옹이 작은 회색 말을 타고 창밖을 지나갈 때, 헤겔(Hegel)은 그를 바라보며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세계정신을 목격했다.” 그러나 거짓과 진실이 뒤섞인 역사. 헤겔은 또 다른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랑스 군대가 자신의 집을 약탈하고 유린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헤겔은 ‘경험적 사실’과 ‘본질’을 구분할 줄 알았다. 그리고 1944년, 나치 중위는 농가들이 받을 수 없었던 ‘존중’ 혹은 ‘고려’를 이 성 앞에서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은 철저히 수색을 했다. 그들은 금품을 약탈했다. 별채에 있는 ‘고층 방(la chambre haute)’에서 몇 가지 문서와 두꺼운 필사본을 발견했다. 그것에는 어쩌면 전쟁 계획이 담겨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침내, 그들은 떠났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있었다. 그러나 성만은 남아 있었다. 귀족들은 살아남았다.

그 순간부터, 젊은 남자는 아마도 불공평함의 고통을 겪기 시작했을 것이다. 더 이상 황홀은 없었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는 단 하나 — 심지어 러시아인들의 눈에도 그는 귀족 계층에 속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이것이 전쟁이었다.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학살의 잔혹함 속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총성이 아직 울리지 않았던 바로 그 순간까지도, 그가 느꼈던 가벼움의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정확히 번역할 수 없다. 삶에서 해방된 감각일까? 무한이 열리는 순간일까? 그것은 기쁨도, 고통도 아니었다. 두려움이 사라진 상태도 아니었다. 어쩌면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한 걸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안다. 아니, 나는 상상한다. 그 분석할 수 없는 감각이 그의 남은 삶을 변화시켰으리라는 것을. 마치 그 밖의 모든 죽음이, 이제 그의 내면에 있는 죽음과 맞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처럼. “나는 살아 있다. 아니, 너는 이미 죽었다.(Je suis vivant. Non, tu es mort.)”


훗날, 그는 파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말로(Malraux)를 만났다. 말로는 그에게 자신이 포로가 되었지만, 신분이 발각되지 않은 덕분에 탈출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한 원고를 잃어버렸다. “그건 예술에 대한 단상들에 불과했어. 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지. 하지만 잃어버린 원고는 절대 다시 같은 것이 될 수 없어.” 폴랑(Paulhan)과 함께 원고를 찾아보려 했지만, 그것은 결국 허사였다.

그러나 무엇이 중요한가. 이제 오직 가벼움의 감각만이 남아 있다. 그것은 곧 죽음 그 자체이거나,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나의 죽음이라는 순간이었다.

Categories
Book Quote

창조의 정신분석

에릭 프랭크 러셀의 짧은 단편 <The Sole Solution>을 슬라보예 지젝이 인용하길래 찾아봤다.

https://archive.org/details/Fantastic_Universe_v05n03_1956-04/page/n109/mode/2up

그는 어둠 속에서 곱씹었다.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떤 목소리도, 속삭임도, 손길도 없었다. 다른 존재의 온기도 없었다. 어둠. 고독. 온통 검고 고요하며 아무것도 섞이지 않는 데서 오는 영원한 얽매임. 사전 정죄 없는 감금. 죄 없는 형벌. 벗어날 방법을 찾아내지 않는 한 견뎌야만 하는 견딜 수 없음. 바깥에서 오는 구출의 희망이란 없다. 다른 영혼, 다른 마음에 슬픔이나 연민, 동정이란 없다.

그리하여 그는 해법을 꿈꾼다.

가장 쉬운 탈출은 상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구속복에 갇힌 이는 자신만의 꿈나라를 모험하며 신체의 덫에서 탈출한다. 하지만 꿈으로는 충분치 않다. 꿈은 현실이 아니고 지나치게 짧기 때문이다. 얻어내야 할 자유는 진짜여야 하고 오래도록 지속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꿈에서 엄정한 현실, 영원히 지속될 만큼 치밀하게 만들어진 현실을 만들어야 했다.

모든 세부 사항을 계획하는 오랜 노력 끝에 실천할 때가 도래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실험을 시작해야 한다. 그는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어둠을 응시하며 말했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

Categories
Book Review

가사, 돌봄노동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반려자인 메리 번즈Mary Burns의 사망 후, 메리의 여동생 리디아와 살았다. 리디아마저 죽은 후에는 마르크스 집안의 하녀였던 헬렌 데무스Helene Demuth가 엥겔스를 돌보았다. 헬렌 데무스가 죽은 후에는 독일사회민주당의 지도자들이 엥겔스를 돌보는 사람으로 루이제 카우츠키Luise Kautsky를 지정했다. 마르크스의 딸인 엘리노어 마르크스Eleanor Marx는 당시 이에 분개했다.

이라영, <<정치적인 식탁>>, <혼자 못 사는 남자들>

이 대목을 읽고 자크 아탈리의 마르크스 평전이 생각나서 뒤적여 봤다.

11월 18일, 헬레나 데무트가 암으로 죽는다. 마르크스와 예니가 바랐던 대로 그녀도 하이게이트 묘지에 있는 마르크스일가의 무덤 안에서 마르크스부부와 어린 해리 곁에 매장되었다. 나흘 뒤 엥겔스는 차티스트주의자들의 오랜신문에다 그녀에 관해 쓴다.

“마르크스가 죽은 이후에도 내가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 집에 있는 그녀의 존재가 가져다 준 햇빛과 후원 덕분이었다.”

자크 아탈리, <<마르크스 평전>>, p.644.

헬레나 데무트는 예니의 하녀였을 뿐 아니라 마르크스의 원고들을 정리하는 일도 도왔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헬레나는 마르크스의 아들을 낳기도 했다. 정확히 서술하자면, 예니가 장기간 집을 비웠을 때 덜컥 임신하고 결국 아들을 낳았지만 누구의 아들인지는 끝까지 털어놓지 않았다. 정황상 마르크스의 아들임이 분명한데 난처해진 친구를 끔찍히도 생각하는 엥겔스가 끝까지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그런 뻔한 거짓말에 속을 사람이 아니었으나 예니도 끝내는 마르크스를 용서했던 것 같다. 마르크스 가족과 엥겔스는 헬레나를 단순한 하녀가 아닌 진정한 가족으로 여겼고 마르크스 사후 엥겔스의 집으로 옮겨간 것도 경제적인 이유와 더불어 마르크스의 방대한 유고를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엥겔스는 헬레나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했던 것 같다.

F. 레스너라는 한 증인은 같은 사실을 다르게 소개한다.

“헬레나 데무트를 잃게 된 것이 엥겔스로서는 아주 고통스러웠다. 다행히도 얼마 안 가서 루이제 카우츠키, 오늘날에는 프라이베르거 부인이 된 그녀가 빈을 떠나 런던으로 와서 앵겔스의 집을 관리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책, p.645.

루이제 카우츠키가 엥겔스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 배경도 사실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독일 사회민주당 내의 정치투쟁과 관련되어 있다. 당시 마르크스를 비판하던 베른슈타인이 선점하기 전에 자신의 세력을 보내고 싶었던 베벨과 리프크네히트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마르크스의 딸 엘레아노르는 루이제 카우츠키와 그녀의 새 남편 프라이베르거가 아버지의 지적 유산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상황을 걱정했던 것 같다.

프라이베르거 부부는 엥겔스의 집 일부를 차지하고, 그 집에다 자기네 이름까지 갖다 붙이고, 전에 카우츠키 부부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엥겔스를 자기네 지배 아래에 붙잡아두고 있는 듯했다. 엘레아노르는 자기 언니에게 이런 상황에 대해 터놓고 얘기했다.

같은 책, p.651.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이라영 선생님이 제기한 문제를 흐리는 서술이 되어버렸다. 당시 상황을 조금 더 상세히 바라보고 싶었다. 분명히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당시 대부분의 남성들이 그러했듯이 가사노동을 여성의 일로 여겼고 평생 여성들의 돌봄에 의지하며 살았다. 급진적인 지식인의 대명사 같은 존재들도 일상 속에서는 가부장제가 정한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화담 서경석의 일화는 더 직설적이다. 허균의 아버지인 허엽이 스승이었던 서경석의 별장에 찾아가 하인을 시켜 밥을 짓게 하려다 보니 솥 안에 이끼가 가득해서 까닭을 물었고, 서경석이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이다. “물이 막혀서 엿새를 집사람이 오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오랜 동안 식사를 못하였다. 그러니 분명 솥에 이끼가 끼었을 것이다.” 아내가 없으면 밥을 굶고 이를 당연하고도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던 시절, 참으로 미개했던 시절이다, 라고 끝내면 좋겠지만 슬프게도 오늘날과 무관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밥 타령을 한다. 집밥의 가치에 대해 지겹도록 말하다가 이제는 홀로 밥 먹는 남성에 대한 연민으로 어쩔 줄 몰라 한다. 혼자 밥 잘 해먹는 남자들도 많은데, 이런 남자들은 보편적이지 않은 사례라며 밀어내려 한다. ‘남성연대’는 주방에 자주 들락거리는 ‘같은 남자’들을 싫어한다. 가부장제는 여성들이 하던 성 역할에 참여하는 남성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런 남자들이 많아질수록 성 역할이 깨지기 때문이다.

이라영, 같은 책.

지식은 확실히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의 해상도를 높힌다. 흐릿한 실루엣으로 보이던 부분을 더 선명히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계기들이 있다.

Categories
Book Quote

범죄의 정의

페르 발뢰와 나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로 스웨덴 사회가 십 년에 걸쳐서 변해가는 모습을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말하자면 스웨덴 사회를 해부하려 했습니다. 우리는 좌파의 시각에서 사회를 묘사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시리즈의 부제를 ‘범죄 이야기’라고 붙였는데, 여기에서 범죄란 말을 사회가 노동계급을 버렸다는 뜻으로 사용했죠.

마이 셰발, <<로재나>>, 한국어판 서문

박찬욱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소품으로 잠깐 등장하는 것을 눈여겨 보고 바로 구입한 국내판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첫 편을 펼치니 이런 근사한 서문이 반긴다.

Categories
Book Science

동반자, 잡초

하지만 잡초들에겐 적어도 하나의 공통된 행동 양식이 있다. 그들은 인간과 함께 번성한다는 것이다. 잡초는 기생식물이 아니다. 그들은 인간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 곁에서 유독 번성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자연계에서 그들의 생태적 협력자다. 잡초는 우리가 땅에서 하는 일을 좋아한다. 숲을 청소하고, 땅을 파고, 농사를 짓고, 영양분이 풍부한 쓰레기를 버리는 것 말이다.

<< 처음 읽는 식물의 세계사>>, 리처드 메이비. 29p.
Categories
Art Book

NFT 아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자매지로 창간된 <크리티크M>를 들추니 이른바 NFT 아트에 관한 칼럼이 눈길을 끈다. NFT 어쩌고 하는 수 많은 비전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차에 호크니가 NFT 아트 투자에 앞장 선 사람들을 “국제적인 사기꾼”이라고 단정짓는 대목을 만나니 반갑기도 했다. 그러니까, 여러 장의 사진을 짜깁기한 300메가바이트의 JPG 파일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서 수백억 원에 팔았다는 건데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위화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Everydays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 Beeple

NFT 아트가 그저 이미지 파일이 아니라 예술작품으로 평가받으려면 오프라인 공간과 확연히 변별되는 의미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오프라인 세계를 모방하는 시뮬라크르(Simulacre)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의미와 진실을 추구함으로써 이전에 없던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물론 그에 따르는 디지털 문해력, 틈새에서 발견될 또 다른 불평등도 대비해야 할 테다.

<<크리티크M>> 창간호, <비대면 시대>, 예술의 새로운 시도, 김지연, 25p.

코인의 거래시장은 현실 주식시장의 퇴폐적 측면을 일차적으로 모방하는 시뮬라크르인 것 같다. 최근 발생한 루나-테라 코인 사태는 그 모방된 욕망의 파국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해당 글과 멀리 떨어진 다른 글에서 어떤 통찰을 얻은 기분이 드는 건 착각일까.

오늘날 영화 예술은 조직적으로 평가 절하되고, 소외되고, 비하되면서 ‘콘텐츠’라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로 축소되고 있다. 15년 전만 해도 ‘콘텐츠’는 영화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눌 때나 들을 수 있는 단어였으며, ‘형식’과 대비되고 비교되는 의미로만 쓰였다. 그런데 그 뒤로 예술형식의 역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심지어 알려고 하지도 않는 이들이 미디어 회사를 인수하면서 점차 ‘콘텐츠’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크리크M>> 창간호, <펠리니와 함께 시네마의 마법이 사라지다>, 마틴 스코세이지, 177p.

Categories
Art Book

인상

“Tempête de Neige” exposé en 1842 de J.W. Turner Snow Storm – Steam-Boat off a Harbour’s Mouth making Signals in Shallow Water, and going by the Lead

그러나 어느 누구도 터너의 그림을 보고 19세기의 증기선을 다시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시커먼 선체(船體)와 돛대에서 펄럭이는 깃발, 사나운 바다의 위협적인 돌풍과 대결하는 투쟁의 인상 뿐이다. 마치 휘몰아치는 바람과 파도의 충격을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세세한 부분은 살펴볼 겨를이 없다. 그런 부분들은 눈부신 빛과 폭풍의 어두운 그림자에 의해 삼켜져버렸다.

E. 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494p. (16차 개정증보판)
Categories
Book

여우 한 쌍

여우 한 쌍이 눈밭을 헤집네,
신방 차린 토굴가를 쿵쿵 밟으며,
밤이면 그 억센 사랑이 주위에
타는 목마름을 핏자국처럼 뿌리네.

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1926~1984』, 그린비, 109p.

이 시의 제목은 원래 「웅덩이에 고인 희미한 빛」이며 미셸 푸코가 죽기 나흘 전인 1984년 6월 21일에 르네 샤르가 썼다고 한다. 샤르는 푸코의 죽음을 슬퍼하는 폴 벤느에게 이 시를 선물한다. 벤느는 “그때 우리들은 푸코를 ‘푹스'(여우)라고 불렀죠”라며 감동했다고 한다. 시는 푸코의 장례식에서 낭송된다.

푸코는 르네 샤르의 시를 애정했고 여러 저작에 그 흔적을 남겼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런 교류를 맺지 못했다고 한다. 샤르 역시 푸코를 매우 존경했다고 한다.

벌써 형성되기 시작한 전설과는 달리 샤르와 푸코 사이에는 이처럼 사후의 묘한 인연밖에는 없다. “그 전설이 사실이라면 재미있겠지만 그러나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좀더 정직한 일이 될 것이다”라고 폴 벤느는 르네 샤르에 관한 글 속에서 말했다.

같은 책. 109p.

서로를 가슴 깊이 존경했으면서도 직접 만나지는 못했던 위대한 두 지성 이야기가 몹시도 매혹적이다. 철학자는 자신의 저작에 시인의 싯구를 새겨넣었고 시인은 철학자의 무덤에 시를 바친다. 눈밭에 타는 목마름을 핏자국처럼 뿌리는 억센 사랑…

Categories
Book ETC Quote

오랜 좌절

브렉시트 캠페인을 결정지은 주장은 복잡하지 않았다. 캠페인의 집중 공략 사항을 담은 주요 공약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몇 주 동안 버스 옆면을 도배한 그 주장은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는 EU에 매주 3억 5000만 파운드를 보낸다. 이 돈으로 국민 의료보험(NHS)을 지원하자.”

제임스 볼,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215p.

매주 NHS에 3억 5000만 파운드를 지원하겠다는 주장은 근본적으로 정치적 개소리였다. 어느 정치인이나 정당도 이 주장을 제대로 책임지지 않았고, 투표로 심판하지도 못했다. 이 수치를 쓴다고 질책하는 공식적인 규제기관이나 중재기관도 없었고, 세부적으로 따지다 보면 탈퇴 캠페인이 쓰는 수에 휘말리기 일쑤였다. 도발적인 주장을 던지는 전략은 캠페인 내내 이어졌다.

같은 책, 220p.

투표 전 마지막 주에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모리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탈퇴진영의 주장이 몇 주에 걸쳐 그 신뢰성을 의심받았음에도 응답자의 78퍼센트가 매주 3억 5000만 파운드씩 EU에 보낸다는 탈퇴캠프의 주장을 들은 적이 있고 47퍼센트는 이 주장을 사실로 믿는다고 답했다. 또한 45퍼센트는 터키가 곧 EU에 가입한다고 믿었다.

같은 책, 230p.

정치에 큰 관심이 없고 참여하지도 않는 사람을 다소 모욕적이지만 ‘정보 수준이 낮은 유권자’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 집단이 어떤 메시지에 반응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캐머런 전 총리의 미디어 담당이었고 BBC 방송 중역이었던 크레이그 올리버는 이 집단과 관련한 정서는 오랜 좌절이라고 보았다.

같은 책, 231~23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