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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our Politics

52시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과 관련해 “생산직은 (사무직과 달리) 주 52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반발이 있다”며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 대상에서 배제할 수 있다는 태도를 밝혔다.

한겨레, 5월 17일, <이준석 “생산직, 주 52시간 이상 원해”…노동계 “임금구조 왜곡 간과”>

52시간 이상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임금이 낮으니 잔업하고 특근하는 거지. 32시간 정도 일하게 하고 52시간 이상의 돈을 주는 게 바람직한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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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Book

NFT 아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자매지로 창간된 <크리티크M>를 들추니 이른바 NFT 아트에 관한 칼럼이 눈길을 끈다. NFT 어쩌고 하는 수 많은 비전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차에 호크니가 NFT 아트 투자에 앞장 선 사람들을 “국제적인 사기꾼”이라고 단정짓는 대목을 만나니 반갑기도 했다. 그러니까, 여러 장의 사진을 짜깁기한 300메가바이트의 JPG 파일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서 수백억 원에 팔았다는 건데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위화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Everydays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 Beeple

NFT 아트가 그저 이미지 파일이 아니라 예술작품으로 평가받으려면 오프라인 공간과 확연히 변별되는 의미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오프라인 세계를 모방하는 시뮬라크르(Simulacre)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의미와 진실을 추구함으로써 이전에 없던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물론 그에 따르는 디지털 문해력, 틈새에서 발견될 또 다른 불평등도 대비해야 할 테다.

<<크리티크M>> 창간호, <비대면 시대>, 예술의 새로운 시도, 김지연, 25p.

코인의 거래시장은 현실 주식시장의 퇴폐적 측면을 일차적으로 모방하는 시뮬라크르인 것 같다. 최근 발생한 루나-테라 코인 사태는 그 모방된 욕망의 파국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해당 글과 멀리 떨어진 다른 글에서 어떤 통찰을 얻은 기분이 드는 건 착각일까.

오늘날 영화 예술은 조직적으로 평가 절하되고, 소외되고, 비하되면서 ‘콘텐츠’라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로 축소되고 있다. 15년 전만 해도 ‘콘텐츠’는 영화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눌 때나 들을 수 있는 단어였으며, ‘형식’과 대비되고 비교되는 의미로만 쓰였다. 그런데 그 뒤로 예술형식의 역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심지어 알려고 하지도 않는 이들이 미디어 회사를 인수하면서 점차 ‘콘텐츠’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크리크M>> 창간호, <펠리니와 함께 시네마의 마법이 사라지다>, 마틴 스코세이지, 1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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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말하고 싶지 않은 것

당신네 사람들이 얘기하기를 꺼리는 주제가 무엇이냐는 레딧의 어떤 질문에 올라온 댓글 하나.

I live in Japan for 3 years and have some Japanese friends. Everytime I asked them about WW2, they mostly did not know the atrocities that Japan did in WW2. They knew Japan was in the wrong side, but it seems the details were lost. It seems like there is a national effort to forget this history because it was “shame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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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our

파리바게뜨

한국노총을 통해 매달 100여 명씩 탈퇴서가 들어왔습니다. ‘돈을 줍니다. 민주노총 탈퇴서 받아가면 돈을 줍니다. 민주노총 조합원 0%로 만드는 게 목적이다. 회의 때마다 민주노총 조합원 명단을 화면에 띄워놓고 탈퇴율을 체크를 합니다. 업무 하지 말고 민주노총 조합원 매장만 찾아다녀서 탈퇴서를 받으라 합니다.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 임종린, <단식투쟁에 들어가며>

이런 나라가 ILO 사무총장 자리를 탐하다니 너무 후안무치한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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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Quote

인구가족부

파시즘은 각자의 성이 자연적 특징을 드러냈던 황금시대를 돌이켜 보면서, 이런 자연적 특성을 포기하는 행위를 근대적 타락과 민족적 쇠퇴의 핵심으로 보았다. 남녀의 정당한 지위가 무너졌기 때문에 남녀 사이에 갈등이 생겨난다. 히틀러에 따르면, “남녀 각자가 자연이 부여한 임무를 충실히 지키는 한, 남녀간 갈등은… 불가능하다.” 모든 반동적 정치와 마찬가지로, 파시즘은 여성의 본질적인 직무는 자녀의 생산이며, 가족 단위 안에 위치해야만 비로소 편안해진다고 생각했다. 파시즘에 있어서 생물학은 진정한 운명이었다. 남성이 전쟁을 하도록 운명지어졌다면, 여성의 운명은 모성이었다. “전쟁이 남자의 것이라면, 어머니다움은 여자의 것이다.”

마크 네오클레우스, 『파시즘』, 이후, p.177.

나치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던 괴벨스는 “여성에게 가장 적합한 장소는 가족이며, 가장 중요한 의무는 국가와 민족에게 아이를 선물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 더 이상 여성 해방의 이름 아래 여성들의 고유한 임무를 등한시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유정희 (2001). 파시즘 국가와 여성. 페미니즘 연구, (1), 11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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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Politics

예언

요즘 뉴스를 훑다 보면 다른 건 몰라도 윤석열 당선인이 청와대라는 ‘공간’에 가진 강한 거부감만큼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그 거부감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모호한 아포리즘으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때문에, 막연히 구전되며 유통되고 있는 가설, 그러니까 그가 어떤 무속인에게서 청와대와 관련한 불길한 신탁을 받았다는 소문을 그저 농담으로 흘려보내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지젝은 라캉의 “진리는 오직 오인을 통해서만 나타난다”는 명제를 설명하면서 윌리암 텐의 SF소설과 서머싯 몸의 희곡 <쉐피>의 한 단락과 함께 오이디푸스 신화를 예로 든다.

다시 말해서 예언은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사람에게 전달되어 그가 그것을 피하려고 함으로써만 진리가 된다.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게 되고 그것을 피하려고 한다. 그런데 예정된 운명이 실현되는 것은 바로 그러한 도망침을 통해서다. 예언이 없었다면 어린 오이디푸스는 자기 부모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살았을 것이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109p.

뭔가 고전적인 비극이 하나 만들어질 것도 같고…

[추가] 재발견한 작년의 에피소드 하나: 유승민 측 “윤석열 대뜸 ‘정법 유튜브 보라’며 손가락질” (한경, 2021.10.06. 고은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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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Book

인상

“Tempête de Neige” exposé en 1842 de J.W. Turner Snow Storm – Steam-Boat off a Harbour’s Mouth making Signals in Shallow Water, and going by the Lead

그러나 어느 누구도 터너의 그림을 보고 19세기의 증기선을 다시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시커먼 선체(船體)와 돛대에서 펄럭이는 깃발, 사나운 바다의 위협적인 돌풍과 대결하는 투쟁의 인상 뿐이다. 마치 휘몰아치는 바람과 파도의 충격을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세세한 부분은 살펴볼 겨를이 없다. 그런 부분들은 눈부신 빛과 폭풍의 어두운 그림자에 의해 삼켜져버렸다.

E. 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494p. (16차 개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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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Review

섬뜩하고 으스스한

경향신문, “설농식씨 이야기” (복길)는 김동령, 박경태 감독의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를 상당히 매혹적인 방식으로 평하고 있어서 여러 번 반복해서 읽게 된다.

근원적인 불안 — 그러니까 좀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동시대를 사는 어떤 여성(들)의 불안 — 을 삼킬 수 있는 섬뜩하고 으스스한 존재란 지금껏 주변에 존재해왔지만 장르적인 전통 속에서 배제되어 왔던, 글도 모르는 여자들의 머릿속에 가득하던 ‘수상하고 몽환적인’ 장면들이 오로지 화자의 기분에 따라 즉흥적이고 무질서하게 나열되고 섞이고 반복되고 변주되면서 만들어지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뒤죽박죽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는 그 이야기를 이해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들으려는 사람에게 비로소 말을 한다.

살아온 인생의 굴곡은 모두 다르지만 꾹 참은 울분이 터져 새어 나오면 그 속에 우리는 같은 모습으로 섞인다.

복길, “설농식씨 이야기”

내러티브가 문제가 아니고 그 수상하고 몽환적인 머릿속 장면들을 탄생시킨 억압의 기원들이야말로 중요한 것이며 바로 그 기원들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여자들)은 기어코 그것이 바로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채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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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여우 한 쌍

여우 한 쌍이 눈밭을 헤집네,
신방 차린 토굴가를 쿵쿵 밟으며,
밤이면 그 억센 사랑이 주위에
타는 목마름을 핏자국처럼 뿌리네.

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1926~1984』, 그린비, 109p.

이 시의 제목은 원래 「웅덩이에 고인 희미한 빛」이며 미셸 푸코가 죽기 나흘 전인 1984년 6월 21일에 르네 샤르가 썼다고 한다. 샤르는 푸코의 죽음을 슬퍼하는 폴 벤느에게 이 시를 선물한다. 벤느는 “그때 우리들은 푸코를 ‘푹스'(여우)라고 불렀죠”라며 감동했다고 한다. 시는 푸코의 장례식에서 낭송된다.

푸코는 르네 샤르의 시를 애정했고 여러 저작에 그 흔적을 남겼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런 교류를 맺지 못했다고 한다. 샤르 역시 푸코를 매우 존경했다고 한다.

벌써 형성되기 시작한 전설과는 달리 샤르와 푸코 사이에는 이처럼 사후의 묘한 인연밖에는 없다. “그 전설이 사실이라면 재미있겠지만 그러나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좀더 정직한 일이 될 것이다”라고 폴 벤느는 르네 샤르에 관한 글 속에서 말했다.

같은 책. 109p.

서로를 가슴 깊이 존경했으면서도 직접 만나지는 못했던 위대한 두 지성 이야기가 몹시도 매혹적이다. 철학자는 자신의 저작에 시인의 싯구를 새겨넣었고 시인은 철학자의 무덤에 시를 바친다. 눈밭에 타는 목마름을 핏자국처럼 뿌리는 억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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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Press

‘시인’의 죽음

앞서 박씨 페이스북엔 14일 “박진성 애비되는 사람이다. 오늘 아들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황망하다. 가족끼리 조용히 장례를 치르려고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와 관련 박씨 측은 15일 “박씨가 무사한 것을 확인했다”며 사망설을 부인했다.

조선일보, 박진성 시인 부고글 소동에…미투 폭로자 측 “무책임을 넘어 2차가해”

박진성은 과거에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바 있다. (2017년 4월)

박진성 가짜 부고 트윗

이른바 ‘시인’은 왜 이렇게 금방 드러날 거짓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는 걸까? 어린 제자에게 행했던 추악한 행위들을 자신의 죽음으로 덮을 수 있다고 믿지만 차마 죽기는 두려웠던 걸까? 죄를 뉘우치고 피해자에게 사죄하기 보다는 왜 자꾸 다른 선택을 하는 걸까?

2016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피해자가 문단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동참하면서 성희롱 피해를 폭로하자 박진성은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진심을 담아 사죄하기를 원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는 남초커뮤니티 내에서 실명을 포함한 개인정보가 모두 노출된 채 ‘가짜 고발자’ 취급을 받았다. 애시당초 미투운동이 불편했던 남초커뮤니티는 가해자의 말을 일방적으로 받아서 피해자를 물어 뜯기 바빴다. 어린 피해자는 고립된 채 외롭고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다.

2021년 재판부는 드디어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박진성이 제기한 명예훼손 혐의를 기각하고 오히려 그가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너무나 당연한 판결이다. 특히 판결문에 피해자다움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한 점이 인상적인데, 그동안 ‘피해자답지 않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무고녀 취급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성희롱 피해를 당한 사람으로 보기 믿기 어려운 행동을 보였다고 하지만, 성희롱 피해를 당한 경우 마땅히 전형적인 모습이 드러나거나, 어떤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사고는 피해자다움의 행동 양식이 존재한다거나 그것이 부족해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단정해선 안 된다.” (노승욱 판사)

오마이뉴스, ‘박진성 무고 98년생 김현진’ 오명 지운 법원 “공익 목적의 폭로”

박진성의 자살쇼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피해자에게는 고통스러운 2차 가해로 작동한다. 부고와 관련한 소식들은 그 자체가 가짜뉴스이기도 하지만 사건에 대해 교묘하게 왜곡된 프레임을 가미하여 전파되고, 마치 무고한 시인이 고통받았던 것처럼 오인하게 한다. 아마도 그렇게 진실을 감추고 동정을 얻는 것이 그의 의도일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현직 대통령이 실형을 살고 있는 성범죄자인 안희정에게 화환을 보내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물론 그 뒤를 이을 차기 대통령도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윤석열은 이른바 ‘청년공약’으로 성폭력 특별법에 무고 조항을 신설하고 ‘거짓말범죄’를 근절하겠다고 약속했다. 믿기 힘들지만 21세기에 민주공화국의 대통령 후보가 내놓은 공약이다. 성폭력무고로 고소된 사례 중 유죄로 확인된 사례는 전체의 6.4%에 불과하지만1 한국일보, 시대역행하는 성폭력범죄 무고죄 공약 여전히 성폭력사건은 가해자에 앞서 피해자가 심판대에 오르며 유무형의 온갖 음해와 가짜뉴스의 불길을 견뎌야 한다.

안희정 사건의 피해자 김지은 씨는 항소심 유죄 선고 입장문을 통해 그간의 처지를 “화형대에 올려져 불길 속 마녀로 살아야 했던”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묘사했다.2『김지은입니다』, 166p. 그는 누가 쳐다볼지 누가 욕할지 몰라서 좋아하는 호떡조차 마음 편히 사먹을 수 없었다.

잠깐 서 있는 동안에 내내 누가 쳐다볼까 봐 두리번거렸다. 내가 이런 걸 사 먹어도 되는 건지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다. 한가로워 보일 것만 같았다. 그 생각 때문인지 속이 꽉 막혀 체하고 말았다. 호떡 하나 때문에 결국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김지은, 『김지은입니다』, “호떡을 사 먹어도 될까요?”, 241p.

‘시인’의 자살쇼가 화형대에 땔감을 보충할 때마다 피해자는 거세지는 불길을 피부로 견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