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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log

절절

오래된 임화 시집 속표지에 적힌 메시지

책장에서 오래된 시집만 골라서 재단 후 스캔하는 작업을 했다. 임화 시선집의 속표지에서 잊고 있던 메시지를 발견했다. 그래, 책을 선물 받던 날, 심장에도 뼈가 있고 슬픔을 참으면 그 뼈에 핏줄 같은 균열이 퍼지기도 한다는 걸 느꼈지. 한 해 후, 나도 다른 누군가에게 황망한 헤어짐을 선사했다. 보잘것없는 존재를 지탱하고 있던 세상의 모든 것이 끝도 없는 나락으로 무너져버리던 시절, 썩은 동아줄일지언정 카프 시인들, 임화, 그리고 김윤식의 <임화 연구>를 붙잡았던 거다. 누군가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 채 죽어가도, 금 간 뼈를 심장에서 들어내고, 죽어간 동지의 시신을 뜯어 먹으며 살아 남는 자도 있는 거지. 삶이란 게 그렇잖아. 하지만, 화로가 깨어지고 화젓갈도 버렸으니 남은 겨울이 따뜻할 리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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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실천으로서 음악

어느 다큐멘터리 소개 기사를 통해 접하게 된 이름 바버라 데인. 아마 살면서 한두 번은 들어봤을 텐데 전혀 기억에 없다.

1930년대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포크 기타리스트와 가수로 음악 경력을 시작한 데인은 시카고와 뉴욕의 블루스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이후 재즈와 전통 음악, 그리고 영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며 자신의 음악적 영역을 확장했다. 밥 딜런, 존 바에즈, 피트 시거 등 전설적인 음악가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고, 루이 암스트롱, 제인 폰다, 도널드 서덜랜드 등 문화적 아이콘과 함께 세계를 여행하며 공연했다.

그러나 그는 무대 위의 스타로 만족하지 않는다. 베트남 전쟁 시기 GI 운동에 참여했고, 쿠바 혁명 이후 쿠바에서 공연한 최초의 미국 예술가가 되었으며, 북베트남에서도 그녀의 목소리를 전했다.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 행동했고, 이는 FBI의 지속적인 감시와 같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았다.

음악이 과연, 단지 예술이기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그는 진실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초창기의 블루스 음악도 좋지만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늘어놓듯이 부르는 포크도 매력적이다. <나는 자본주의 체제가 싫다>는 곡을 듣다 보면 새삼 느끼게 되는데, 포크는 역시 감상하는 음악이 아니다. 듣고 깨닫는 음악, 함께 부르는 실천이다. 그는 혁명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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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log Music

꿈, 불안, 죽음

핑크 플로이드의 <Julia Dream>.

핑크 플로이드의 멤버들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배경을 지녔지만, 로저 워터스의 경우 조금 결이 다르다. 그의 아버지는 교사였으며 공산주의자였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보긴 어렵지만, 그런 가부장이 만든 가정의 분위기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훗날 그의 곡에 스며든 반전과 사회 비판적 메시지의 근원을 탐색해본다면, 이 배경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사이키델릭이 지배하던 시대, 음악에 모든 것을 건 불온한 젊은이가 써 내려갔을 법한 곡이 바로 이 곡이다. 꿈속을 부유하듯 이어지는 모호한 상징들, 종잡을 수 없는 흐름 속에서도 마디를 이루는 시적인 가사. 어쿠스틱 기타의 리듬 위로 멜로트론이 뿜어내는 몽환적 음색의 선율이 데이비드 길모어의 차분한 보컬과 코러스를 이루다가, 끝내 불안과 죽음의 그림자에 잠식되듯 (혹은 저항하듯), 신경질적이고 불길한 노이즈 속으로 해체 (혹은 지양) 된다.

<The Dark Side of the Moon> 이후의 핑크 플로이드에 익숙한 나에게 이전의 앨범들은 완전히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빽판을 구하거나 알음알음 테이프를 복사해서 찾아 듣던 시절에는 꿈도 못 꿨던 호사가 지금은 가능하다. 그래서 어느덧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 되었다. 음악을 감상한다는 게 하나의 의식이자 체험이던 시대는 가버렸지만, 가끔은 한가하게 음악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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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ck

ctrl pnbfae

Emacs를 사랑하던 사람이 ctrl+pnbfae 단축키를 버릴 수는 없다. 맥북에서 스크리브너로 글을 쓰다보면, 한글 입력 중인 상태에서 ctrl+actrl+ㅁ 으로 인식되어 단축키가 무시되는 문제가 생긴다. 영문입력 상태로 변경해야 제대로 인식되는데 이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적절한 해법을 찾아보다가 결국 Karabiner-Element를 설치.

$ brew update
$ brew install --cask karabiner-elements

추가 설정.

  • Simple Modifications ➡️ Logi POP Keys ➡️ caps_lock ➡️ left_control
  • Complex Modifications ➡️ Add predefined rule
    • Left_Ctrl + p/n/b/f/a/e to up/down/left/right/home/end
    • Change Won to grave accent (`) in Korean lay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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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log ETC

어린 왕자

기억 속 첫 크리스마스 선물은 내가 일곱 살이던 해, 셍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였다. 학교 교육조차 충분히 받지 못했던 우리 집 산타할아버지의 눈엔, 아마도 표지도 예쁘고 삽화도 있는 그 책이 일곱 살 꼬맹이에게 딱 맞아 보였을 것이다. 나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까지 보고 금세 책을 덮어버렸다. 그렇게 책은 시간이 지나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사라졌다. 이후 산타할아버지는 몇 해에 한 번씩 띄엄띄엄 선물을 주셨는데, 그건 아마 내가 종종 나쁜 아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던 해, 은밀히 ‘우정’의 편지를 주고받던 교회 여사친이 여우 이야기를 인용한 일이 있었다. 어릴 적 받았던 첫 크리스마스 선물이 문득 떠올랐다. 도서관으로 달려가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당시의 나는 그런 철학적인 동화에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편지에 인용하기 좋은 구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읽었던 것 같다. 그때 선물할 책은 반드시 내가 먼저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을 것이다.

선물 고르는 센스가 부족하고, 고집이 세며 권위적이고, 일하지 않을 때는 늘 술에 취해 있었지만, 자식들에게만큼은 언제나 따뜻했던 우리 집 산타할아버지는 이제 뇌졸중으로 몸이 불편해지셨다. 얼마 전 찾아뵈었을 때,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를 꺼내 보았는데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하긴 그깟 크리스마스가 뭐라고 아직 기억하겠는가. 2회차 산타란 없다. 누구나 산타는 처음이고 이런저런 실수를 반복하다가 할만하면 은퇴하고 마는 것이다. 은퇴한 산타는 나무늘보처럼 외롭게 느릿느릿 살다가, 어린 왕자처럼 자기 별로 홀연히 떠나버릴 것이다. 그렇게 누구에게나 인생의 어느 순간, 산타 없는 크리스마스가 찾아오는 법이다.

어린 왕자의 삽화. 작품의 마지막 장, 사막에서 조용히 쓰러져 주저앉은 어린 왕자를 그린 그림이다. 하늘에서는 하나의 별, 아마도 그가 돌아가게 될 별이 빛을 내려 쬐고 있다. 어린 왕자 앞에는 한 떨기 꽃이 피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