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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Review

폭풍의 언덕

에메랄드 페넬의 <폭풍의 언덕>. 키가 2미터에 달하는 근육질의 백인, 프랑켄슈타인의 아름다운 괴물, 제이콥 엘로디가 히스클리프이다. 캐서린은 역시 호주 출신의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마고 로비, 에드거 린튼은 인도계 배우인 샤자드 라티프, 넬리는 홍차우가 담당했다. 이런 폭풍의 언덕이라니, 캐스팅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영화가 시작하면 절정을 향해 치닫는 듯한 남성의 신음이 들린다. 카메라는 교수대에 매달려 죽어가는 남자와 그를 지켜보고 있는 어린 캐서린과 넬리, 지저분한 군중을 교차해서 비춘다. 발기되어 있던 남자는 죽으며 사정을 한다. 군중은 환호한다. 이 불쾌하고 거북스러운 시퀀스는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펜넬 감독은 처음부터 노골적이다. 브론테가 절제된 언어 뒤에 숨겼던 외설적 진실, 더럽고 파괴적이고 유독한 사랑의 본질을 얘기하고 싶어 한다. 사랑은 아름다운 안식이 아니라, 나를 파괴하는 낯선 타자를 내 영혼으로 받아들이는 지독한 트라우마이며, 서로를 파멸시키면서도 멈출 수 없는 죽음 충동이다.

(캐서린이 넬리에게): 만약 모든 것이 사라지고 그만 남는다면, 나는 여전히 존재할 거야. 하지만 모든 것이 남고 그가 사라진다면 우주는 아주 낯선 곳이 될 거야.

진정한 사랑은 나의 온 세상을 파괴하고 들어오는 침입자이며, 그 파괴적인 유독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만이 진짜 사랑을 하는 것이다. 사랑의 윤리는 곧 혁명의 윤리이며, 지젝은 종종 이를 누가복음 14:26 예수의 메시지에 빗댄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다소 일관적이지 않고, 순전히 매혹 그 자체를 위한 것으로 보이는 특이성도 있지만, 펜넬의 시선은 매우 독창적이며, 그가 구사하는 영화적 문법은 극도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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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없지만

선배와 통화를 하다가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이해하기 힘들었던 모든 것이 전제 하나를 바꿔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러니 인생의 선배인 게지. 나는 아직 멀었다, 멀었어. 그렇게 펑펑 울고 나니 그동안 미칠 것만 같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편해졌다.

귀가하여 방안을 둘러보니 정성 가득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그게 내 생각과는 다른 의미들이었던 거야. 하지만 다른 의미로 그러는 게 가능하다고? 세상 모두가 너 같지 않아. 그럼 모든 게 설명된다. 아니, 하지만 전에 나눴던 이런저런 대화들을 보면 설명이 안 되는데? 지난 대화 따위 복기하지 마. 아무런 의미 없어. 그래 상대방의 마음을 착각하긴 했어도, 나는 나대로 사랑할 수 있는 거지. 거기서 삐끗하면 사랑이 증오로 변하는 법.

나는 진심으로 그분의 행복을 빌 수 있다. 고양이가 없지만 다행히 이번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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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log

정원 테이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아 마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했다.

며칠 전 135x38mm 방부목을 사와 1200mm 길이로 여섯 개를 재단했다. 목재를 가공할 때 나는 나무 냄새가 너무 좋다. 목수가 직업이었다면 더 행복할까? 모서리를 샌딩한 후 투명 바니시를 칠하고 말렸다. 바니시가 잘 마르면, 다시 바니시를 칠한다. 총 네 번 반복한다.

그렇게 준비한 목재로 오늘은 정원 테이블의 상판을 교체했다. 썩어버린 옛 시간을 뜯어낸다. 새 목재를 올리면서 타이머가 리셋되는 거다. 준비해 둔 목재를 올리면 끝이었는데, 고정할 때 필요한 목재용 나사못이 모자랐다. 급히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서 사 왔다. 감기 때문에 아직도 콧물을 흘리는 상황에서 찬 바람까지 맞으니, 눈물도 흘렀다. 왕복 20km를 달렸다. 돌아와 헬멧을 벗었더니 얼굴에 눈물과 콧물 자국이 뻣뻣하게 느껴진다.

한국인들이 미얀마식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서 ‘쪼쪼’라고 불리던 인물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국의 추위가 견디기 힘들었지만 시종일관 푸대접을 받던 17세의 소년, 골짜기를 타고 칼바람이 불어대서 얼굴에 눈물 자국이 그대로 얼었던 소년. 심지어 나조차도 그의 이름을 외우지 못한다. 너는 참 실망스러운 놈이로구나. 그동안 참았던 온갖 복잡한 감정이 복받쳐서 마당 한가운데서 오열했다. 양지바른 곳에 앉아 있던 고양이, 봄이와 앙금이가 놀랐는지 잔뜩 긴장했다. 십수 년 전, 토미와 어굴이가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었다면, 이제는 너희가 그 자리를 채워줄 거니? 곁을 내어주지도 않는 매정한 녀석들이 그럴 리가.

상판을 완성하고 나서 커피를 한잔했다. 테이블 옆에는 장작을 태울 화로가 있고, 산수유나무와 포도나무가 있다. 집안의 모든 사물, 모든 생명에는 추억이, 기억이 깃들어 있다. 저주이자 축복이다. 아침 기온이 영하 4도였지만 어쨌거나 산수유꽃이 노랗게 피었다. 포도나무에는 싹이 돋고 있다. 식물도 이토록 치열하게 제 몫의 삶을 살고있다. 오후의 따뜻한 햇볕을 머금은 시골의 마당은 이제 영상 8도. 오른손을 가만히 펴서 인사하듯 들어봤다. 산수유나무야, 안녕! 나도 배운 건데, 이렇게 손을 인사하듯 펴 들면 습기나 바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단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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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힘듦은 제 몫”이라는 말, 두고두고 비수처럼 심장을 찌른다. 고통도 나눌 수 있다면… 따뜻한 봄날이 오기를, 부디 모든 상처가 치유되기를… 기다리자,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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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앓는 소리를 낼 때면 고양이들은 내 가슴팍 위로 뛰어올라 까슬한 혀로 얼굴을 훑곤 했다. 네가 아픈 건 알겠다만, 그래도 밥은 차려주고 다시 앓으려무나. 무심한 명령을 나는 기꺼이 알아들었다.

몸이 좋지 않을 때는 꿈의 길목에서 고양이들을 만난다. 꿈속의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면서도 아이들에게 밥과 물을 챙겨준다. 가끔 다른 고양이들, 이를테면, 우리 집 마당 어딘가에서 태어났다가 훌쩍 떠나버린 고양이들, 마당에서 뛰어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싸늘하게 식은 채 발견된 아기 고양이들도 모여 있다. 세상에, 너희들 여기서 살고 있었구나? 정말 다행이다, 너무 다행이야. 내가 밥을 챙겨줄게. 아프지 말고 늘 행복하게 지내렴. 이렇게 중얼거리다가 깬다. 익숙한 외로움이 반긴다.

얼마나 화나고 아프고 외로우실까. 제발, 부디, 건강과 평안을 찾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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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요양원에서 걸려 온 전화 한 통. 수화기 너머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오늘따라 아버지가 방긋방긋 웃으신다며, 직접 숟가락을 들고 식사를 하시는 모습이 너무 고와 소식을 전한다고 했다.

몇 해 전 일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아직 떠듬떠듬 말할 수 있을 때, 할 말이 있다며 전화하셨다. 무슨 일일까 덜컥 걱정하며 찾아갔더니 갑자기 펑펑 울면서 내게 사과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과거 나에게 몇 차례 손찌검했던 일이 떠올랐던 것 같았다. 당연하게도 자식을 사랑했겠지만 그 사랑을 건네는 법을 몰라 서툴렀던 세월. 삶이 잔뜩 엉클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고집스럽고 강인했던 아버지가 그렇게 약해져 있는 걸 보니 나도 슬펐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손을 잡아드렸다. 저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니까 다 잊으시라고. 좋은 기억만 떠올리시라고. 빈말이 아니라 진심을 담았다. 잘못한 걸로 따지면 내가 더 많이 했다. 내가 저지른 수많은 잘못을 뻔뻔스럽게 잊었듯이, 아버지도 그렇게 잊을 자격이 있다.

방긋방긋 웃었다는 표현이 고마웠다.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미흡했던 것은 다정함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저 정당하게 자신과 자식을 사랑했지만 삶이란 늘 뭔가 부족하기 마련이다. 그런 결핍은 부모가 아니라, 친구도, 선생도, 연인도, 신도, 세상 누구도 채울 수 없는 것이다. 타인의 결핍에서 자신의 과오를 찾는 일은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었다.

여태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는 아기처럼 방긋방긋 웃는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술을 마시면서 살다가 뇌졸중으로 끝내는 삶을 동정할 필요 없다고 여겼지만, 내 삶이라고 뭐가 다르겠냐. 지금껏 아버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무신경하고 냉정한 태도를 보여왔던 게 문득 후회스럽다. 지금 스스로가 죽도록 혐오스럽고, 하늘이 갑자기 무너져 눈앞이 캄캄하고, 무엇이라도 붙들고 미친듯이 매달리고 싶은 복잡한 심경이라서가 아니라, 기저귀를 차고 방긋방긋 웃는 아기 같은 존재를, 눈물을 펑펑 쏟으며 떠듬떠듬 미안하다고 사과하던 존재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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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寸

슬라보예 지젝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고, 나는 거기서 회한이나 자기혐오에 고립되는 태도를 훌쩍 넘어서는 완전히 새로우면서도 평범한 경지를 느꼈다.

우리 부모님은 엄격하진 않으셨지만, 저를 깔보는 듯한 태도를 보이곤 하셨어요. 전 부모님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두 분은 어느 날 밤 병원에서 돌아가셨는데, 다음 날 아침 전화를 통해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이미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던 중이었죠. ‘다 처리가 된 건가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라고 말하고는 계속 일을 했습니다. 정말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았죠. 그렇다고 제가 그런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는 건 아닙니다.

결말을 알지만 언제 막이 내릴지 모르는 연극의 구경꾼은 낡은 걱정을 깜깜한 미래의 시공간에 내던지고 한눈을 팔 수밖에 없다. 그저 아침 하늘을 바라보며 비가 오지 않기를, 하염없이 맑기를, 바람이 불지 않기를, 사랑이 그저 달콤하기를, 오늘 하루 안온하기를 바랄 뿐이다.

나중에 죽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말 들을 때가 있었을 게지. 내일과 내일과 내일이 매일처럼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순간까지 답답한 걸음으로 기어오누나. 우리의 수많은 어제들은 바보들을 티끌 같은 죽음 길로 데리고 갔다. 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아. 인생은 그림자놀이, 한동안 무대에서 우쭐대고 안달하다 다시는 소식 없는 불쌍한 광대. 소음과 광란이 가득하고 아무런 뜻 없는 바보 이야기.1<맥베스> 5.5.17-27. 이상섭 역, 문학과 지성사, 2017, 674쪽.

footnote
  • 1
    <맥베스> 5.5.17-27. 이상섭 역, 문학과 지성사, 2017, 6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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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Thoughtcrime

2026년 1월 1일부터 체코에서는 공산주의 운동을 홍보하거나 전파하는 행위가 나치즘과 동일하게 취급되어 최대 5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게 되었다.1Czechia: When Communism Beacame Illegal Again

체코의 법 개정이 특히나 많은 것을 시사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 도덕적 대칭성에만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법은 공산주의 정치가 실제로 살아 숨 쉬는 영역, 즉 계급 적대(class antagonism)의 영역으로 “증오(hate)”의 논리를 슬그머니 확장한다. 조항의 문구 자체를 보면, 금지된 운동은 권리를 억압하거나 인종, 민족, 국가, 종교적 증오를 선동하는 것뿐만 아니라 “계급적 증오(class hatred)”를 옹호하는 운동으로 규정된다. 이 추가된 문구는 기술적인 세부 사항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핵심(pivot)이다.2같은 글.

foot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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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Politics

邪教의 政治

기독교「밋쇼ㄴ」대학인 이화(이화(梨花))여자대학에서는 지난 십사(十四)일 학교전통의 신앙과 배치되는 이단 (이단(異端)) 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졸업반 학생 오(五)명을 포함한 십이(十二)명의 학생에 대하여 제명처분을 정식으로 발표하였는데 전에는 교수 오(五)명을 같은 이유로 파면시킨 일도 있어 교육계 뿐만 아니라 종교계에 다대한 파문을 던지고있다. 그런데 동교에서 이단교라고 지적한 교파는 어떤것인가? 작년초부터 부산 (부산(釜山))에서 기독교혁명운동이라하여 문(문선명(文鮮明)=삼육(三六))씨 주도아래 시작되어 작년 사(四)월 서울로 올라오면서 본격적인 교회운동을 하게 되었다는 기독교의 한 분파로서 현재 서울교회 (통일교회)에서 책임자로일한다는 유(유효원(劉孝元)=사이(四二)) 씨의말을 들어보면통일교회는 『기성기독교의교회가 부패할대로 부패한 오늘날 참다운 예수의 진리를 밝히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종교혁명의 봉화를 들었다』 는것이다.

그런데 이 통일교회는 현재 이(二)백여명의 신도와 부산 대구 두 곳에 교회처소를 갖고있는 것인데 이화대학교와 연희대학 (연대(延大))학생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하며 교회운영은 풍경사진 「푸로마이트」를 가두판매하며 사진업을 함으로써 충당하고있다한다.

<이대(梨大)에 제적사태(除籍沙汰)>, 조선일보, 1955년 5월 16일.

문선명은 초기에 엘리트 계층을 포섭하는 데 주력한다. 형식적으로 신선한 논리체계를 갖춘 교리를 개발함으로써 전후 혼란스러운 허무주의에 빠져있던 젊은 지식인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으로 보인다. 구세주가 한국에서 탄생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자신을 재림예수로 동일시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타락한 천사와 이브 사이의 음란 행위가 원죄이며, 구원받으려면 하나님의 혈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혈통 복귀” 의식이 교주와의 직접적인 성관계(피가름)을 통해 이뤄졌다는 이탈자들의 진술이 있었다.

치안국 중앙분실에서는 사(四)일밤 서울 신당동 소재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세칭통일교회(世稱統一敎會))의 주재자인 문선명(문선명(文鮮明)=삼육(三六))씨를 구속하였는데 전기문씨는 당년삼십육(三十六)세 임에도불구하고 사십오(四十五)세로 늘려 병역을 기피했다는 병역법위반과 불법감금등 혐의로 구속된 것이라고한다. 그런데 전기통일교회는 현하 기독교의 교리와 위반되는 사교(발교(發敎))라고 하여 앞서 이화대학에서는 통일교회의 신도인 등교 교수 및 학생을 파면 또는 퇴학처분한 사실도 있어 한때 세간에 화재를 던진 바 있었던 것이다.

<통일교주인공(統一敎主人公) 문선명씨구속(文鮮明氏拘束)>, 조선일보, 1955년 7월 6일.

한때 일반의 주목을 끌어오던 통일교회사건 제일(一)회공판이 이십(二十)일상오 서울지방법원 재사(四)호법정에서 윤학로(윤학노(尹學老))판사주심 강서룡(강서용(姜瑞龍))검사 관여아래 개정되었다. 그런데 이 공판은 교리나 기타 문제에 대한 것은 전연 없고 순전히 교주 문선명(문선명(文鮮明))외 삼(三)명에 관한 병역법 위반에 대한 공판이었는 바 피고들은 사실심리에서 연명인상을 시인하였다.

<병역기피시인(兵役忌避是認)>, 조선일보, 1955년 9월 21일.

문선명은 병역법 위반, 불법 감금 등의 혐의로 구속된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에게는 일종의 전환점, 조직과 전략을 더 정교하게 다듬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또한 ‘피가름’과 관련한 풍기문란 혐의에 대해서 무죄판결을 받음으로써 섹스교라는 비난을 일축할 만한 법적 근거를 얻게 되었다. 60년대 이후부터는 포교를 사회 활동 뒤로 숨기기 시작한다. 예술단, 학교를 설립하고, 성대한 합동결혼식을 연출한다. 또한 국내의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 해외로 눈을 돌린다.

삼(三)일 서울 청파동(청파동(靑坡洞)) 일(一)가 칠일(七一)의삼(三)「세계기독교통일 신령협회 서울교회」에서 전국남녀신도 칠십삼(七十三)쌍의 합동결혼식이 오전 팔(八)시부터 시작되었다.

주례는 이 교회의「선생님」문선명(문선명(文鮮明))씨 부부가 흰예복을 입고 섰고 결혼을 하는 신랑신부의 옷은 한결같이 까운비슷한 흰예복을 길게 입었으며 식장에 참석한 신도들도 신을 제외한 양말장갑까지 모두 하얀 것을 착용하고 있었다.

<통일교도(統一敎徒)들합동결혼식(合同結婚式)>, 조선일보, 1962년 6월 4일.

신도가 된 미국사람들은 살아있는 주님이라는데 매혹되어 혹은 어느 다른 종교와 달리 너무나 뚜렷한 하나님을 앞에 내놓았기 때문에 호기심으로 덤벼들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들 교회책임자들에 의하면 인류는 말세를 당하였으나 무차별파괴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인간죄악을 멸해서 창조본연의 이상을 실현하고, 그 실현이 재림이상에 의해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고, 한국에 태어난 문선명씨를「아버님」이라고부르고있다.

그리고 문선명씨의 이름을 영어로 써서「Sum·M·Moon」이라하여 해와달, 즉 세계를 통일하는 구세주의 이름으로해석하고 있다.

<미국(美國)에 번지는 한국통일교(韓國統一敎)>, 조선일보, 1964년 7월 5일.

기성 교회와 대화를 시도하지만 화해가 가능할 리 없다. 한국에서 종교로서의 입지는 더 어려워진다.

그는 창조론(創造論)에서 인간(人間)은 미완성단계에서 타락함으로써 인간이 신(神)의 창조성으로 물려받은 책임분담을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창조목적인 지상천국(地上天国)을 이루기위해서는 인간이 완성(完成)된 개체(個體)로 복귀(復帰)되어야한다.그리고 타락한 인간의 구원을 목적으로 온 예수의 죽음은 따라서 신(神)의 구원목적의 실패를 의미한다.

예수의 재림(再臨)의 필요설은 여기에서 더욱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예수의 재림이 가져오는 이 세상의 종말은 이 지상(地上)의 종말이 아니라 지상천국(地上天国)을 이룩하는 것이며 불의 심판이 아니라 말씀(진리(真理))의 심판이된다. 이어서 그는 재림(再臨)하는 예수는 필연적으로 한국에 나타날 것이라고 신구약(新旧約) 성서(聖書)를 인용, 주장한다.

재미있는 것은 선악과(善悪果)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창세기(創世紀))에 대한 해석. 이브를 유혹한 뱀은 타락한 천사이며,타락한 천사(뱀)와 이브 사이의 불륜(不倫)의 관계, 그리고 이브와 아담 사이의 불륜(不倫)의 관계로 풀이하고 있다.

이 음난(淫乱)행위가 원죄(原罪)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원죄(原罪)를 구속(救贖)하려고 온 예수가 그 구원목적을 실패했기 때문에 메시아의 재림(再臨)이 불가피한것이며, 이제 한국은 그 메시아가 나타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안병무(安炳茂)(중앙신대(中央神大)교수)박사도 성서(聖書)의 부분적인인용은「성경을 비참한희생물」로 만들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동세(韓東世)(정신과의(精神科医)·서울의대(医大)교수)박사는 문선명(文鮮明)씨나 유효원(劉孝元)씨 등 통일교회(統一敎会) 지도자의 개인적인 성장환경에 관심을 보였다. 현실에서 좌절이 심하고 반항(反抗)이 강한 사람들의 집단적인 에고(ego)를구하려는 욕구충족과정으로서 종교를 파악했다.

따라서 이성(理性)보다는 정서에 호소하려는 요소—열광주의,비논리성(非論理性)—의제거가 기성,신흥을 망라한 종교가 당면한 문제라고 말한다.

<기성교회(既成敎会) 통일교회(統一敎会) 최초(最初)의 대화(対話)>, 조선일보, 1968년 9월 12일.

종교적 논쟁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던 걸까.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에서 반공이데올로기를 “교리”로 도입한다. 냉전 시기 한국, 일본, 미국의 보수 진영과 궤를 같이 하는 강력한 반공 메시지를 통해 주류 사회에 빠르게 침투하고, 국가의 정계 핵심 인물들과 관계를 맺고 지지 기반을 닦는다.

특히 주목되는것은「공산주의(共産主義)를 이론적으로 승복시킬수있는 원리(原理)」로서제시되는 승공이념(勝共理念)이란바로 통일교회(統一教会)의교리(教理)인「원리(原理)」라는 사실이다.

「한국이 낳은 3대신학서(代神學書)가운데 하나」라고 연대신대학장(延大神大學長) 서남동(徐南同)교수가 격찬한 통일교회(統一教会)의 교리(教理)가운데 특이한 점은 ①예수님께서 한국에 재림(再臨)하고 ②인류세계는 이 재림한 예수를 중심으로 하나의 대가족(大家族) 사회로 통일되며 ③이에 따라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최종목표인 지상천국(地上天国)을 세운다는점이다.

최종목표로 설정된 지상천국(地上天国)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수 없으나 이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통일교회(統一教会)가 승공(勝共)운동을 들고나섰고, 이것을 의도했든 안했든간에 국가시책과 상응(相応)한다는 점에서 당국의 직접간접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정치성(政治性) 띠는통일교회(統一教会)>, 조선일보, 1970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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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사랑

사랑은 서로의 욕망이 완벽히 합치될 수 있다는 감상적인 기대를 저버리는 데서 시작된다. 사랑은 완성이 아니라, 인간 주체의 근원적인 결여와 상대의 메울 수 없는 공백이 조우하는 비극적 사건에 가깝다.

조화로운 통일이라는 환상을 걷어낼 때, 비로소 우리는 상대의 결함을 내 정체성의 초석으로 받아들이는 진실의 장소에 도달한다. 사랑의 위대함은 불가능을 극복하여 기적을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불가능성 자체를 관계의 유일한 토대로 삼는 용기에 있다.

필연적으로 어긋나고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실패의 반복이야말로 서로를 도구화하지 않고, 타자로서 온전히 마주하고 있다는 유일한 증거이다.1네가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아서 내가 고통스럽고 실망스럽다면, 역설적으로 그것이야말로 내가 지금 나의 환상이 아닌 참된 너를 마주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인 셈이다. 우리는 다시 기꺼이 실패해야 한다. 사랑은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 주체의 가장 고결한 결단이기 때문에.

footnote
  • 1
    네가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아서 내가 고통스럽고 실망스럽다면, 역설적으로 그것이야말로 내가 지금 나의 환상이 아닌 참된 너를 마주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