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밋쇼ㄴ」대학인 이화(이화(梨花))여자대학에서는 지난 십사(十四)일 학교전통의 신앙과 배치되는 이단 (이단(異端)) 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졸업반 학생 오(五)명을 포함한 십이(十二)명의 학생에 대하여 제명처분을 정식으로 발표하였는데 전에는 교수 오(五)명을 같은 이유로 파면시킨 일도 있어 교육계 뿐만 아니라 종교계에 다대한 파문을 던지고있다. 그런데 동교에서 이단교라고 지적한 교파는 어떤것인가? 작년초부터 부산 (부산(釜山))에서 기독교혁명운동이라하여 문(문선명(文鮮明)=삼육(三六))씨 주도아래 시작되어 작년 사(四)월 서울로 올라오면서 본격적인 교회운동을 하게 되었다는 기독교의 한 분파로서 현재 서울교회 (통일교회)에서 책임자로일한다는 유(유효원(劉孝元)=사이(四二)) 씨의말을 들어보면통일교회는 『기성기독교의교회가 부패할대로 부패한 오늘날 참다운 예수의 진리를 밝히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종교혁명의 봉화를 들었다』 는것이다.
그런데 이 통일교회는 현재 이(二)백여명의 신도와 부산 대구 두 곳에 교회처소를 갖고있는 것인데 이화대학교와 연희대학 (연대(延大))학생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하며 교회운영은 풍경사진 「푸로마이트」를 가두판매하며 사진업을 함으로써 충당하고있다한다.
<이대(梨大)에 제적사태(除籍沙汰)>, 조선일보, 1955년 5월 16일.
문선명은 초기에 엘리트 계층을 포섭하는 데 주력한다. 형식적으로 신선한 논리체계를 갖춘 교리를 개발함으로써 전후 혼란스러운 허무주의에 빠져있던 젊은 지식인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으로 보인다. 구세주가 한국에서 탄생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자신을 재림예수로 동일시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타락한 천사와 이브 사이의 음란 행위가 원죄이며, 구원받으려면 하나님의 혈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혈통 복귀” 의식이 교주와의 직접적인 성관계(피가름)을 통해 이뤄졌다는 이탈자들의 진술이 있었다.
치안국 중앙분실에서는 사(四)일밤 서울 신당동 소재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세칭통일교회(世稱統一敎會))의 주재자인 문선명(문선명(文鮮明)=삼육(三六))씨를 구속하였는데 전기문씨는 당년삼십육(三十六)세 임에도불구하고 사십오(四十五)세로 늘려 병역을 기피했다는 병역법위반과 불법감금등 혐의로 구속된 것이라고한다. 그런데 전기통일교회는 현하 기독교의 교리와 위반되는 사교(발교(發敎))라고 하여 앞서 이화대학에서는 통일교회의 신도인 등교 교수 및 학생을 파면 또는 퇴학처분한 사실도 있어 한때 세간에 화재를 던진 바 있었던 것이다.
<통일교주인공(統一敎主人公) 문선명씨구속(文鮮明氏拘束)>, 조선일보, 1955년 7월 6일.
한때 일반의 주목을 끌어오던 통일교회사건 제일(一)회공판이 이십(二十)일상오 서울지방법원 재사(四)호법정에서 윤학로(윤학노(尹學老))판사주심 강서룡(강서용(姜瑞龍))검사 관여아래 개정되었다. 그런데 이 공판은 교리나 기타 문제에 대한 것은 전연 없고 순전히 교주 문선명(문선명(文鮮明))외 삼(三)명에 관한 병역법 위반에 대한 공판이었는 바 피고들은 사실심리에서 연명인상을 시인하였다.
<병역기피시인(兵役忌避是認)>, 조선일보, 1955년 9월 21일.
문선명은 병역법 위반, 불법 감금 등의 혐의로 구속된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에게는 일종의 전환점, 조직과 전략을 더 정교하게 다듬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또한 ‘피가름’과 관련한 풍기문란 혐의에 대해서 무죄판결을 받음으로써 섹스교라는 비난을 일축할 만한 법적 근거를 얻게 되었다. 60년대 이후부터는 포교를 사회 활동 뒤로 숨기기 시작한다. 예술단, 학교를 설립하고, 성대한 합동결혼식을 연출한다. 또한 국내의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 해외로 눈을 돌린다.
삼(三)일 서울 청파동(청파동(靑坡洞)) 일(一)가 칠일(七一)의삼(三)「세계기독교통일 신령협회 서울교회」에서 전국남녀신도 칠십삼(七十三)쌍의 합동결혼식이 오전 팔(八)시부터 시작되었다.
주례는 이 교회의「선생님」문선명(문선명(文鮮明))씨 부부가 흰예복을 입고 섰고 결혼을 하는 신랑신부의 옷은 한결같이 까운비슷한 흰예복을 길게 입었으며 식장에 참석한 신도들도 신을 제외한 양말장갑까지 모두 하얀 것을 착용하고 있었다.
<통일교도(統一敎徒)들합동결혼식(合同結婚式)>, 조선일보, 1962년 6월 4일.
신도가 된 미국사람들은 살아있는 주님이라는데 매혹되어 혹은 어느 다른 종교와 달리 너무나 뚜렷한 하나님을 앞에 내놓았기 때문에 호기심으로 덤벼들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들 교회책임자들에 의하면 인류는 말세를 당하였으나 무차별파괴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인간죄악을 멸해서 창조본연의 이상을 실현하고, 그 실현이 재림이상에 의해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고, 한국에 태어난 문선명씨를「아버님」이라고부르고있다.
그리고 문선명씨의 이름을 영어로 써서「Sum·M·Moon」이라하여 해와달, 즉 세계를 통일하는 구세주의 이름으로해석하고 있다.
<미국(美國)에 번지는 한국통일교(韓國統一敎)>, 조선일보, 1964년 7월 5일.
기성 교회와 대화를 시도하지만 화해가 가능할 리 없다. 한국에서 종교로서의 입지는 더 어려워진다.
그는 창조론(創造論)에서 인간(人間)은 미완성단계에서 타락함으로써 인간이 신(神)의 창조성으로 물려받은 책임분담을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창조목적인 지상천국(地上天国)을 이루기위해서는 인간이 완성(完成)된 개체(個體)로 복귀(復帰)되어야한다.그리고 타락한 인간의 구원을 목적으로 온 예수의 죽음은 따라서 신(神)의 구원목적의 실패를 의미한다.
예수의 재림(再臨)의 필요설은 여기에서 더욱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예수의 재림이 가져오는 이 세상의 종말은 이 지상(地上)의 종말이 아니라 지상천국(地上天国)을 이룩하는 것이며 불의 심판이 아니라 말씀(진리(真理))의 심판이된다. 이어서 그는 재림(再臨)하는 예수는 필연적으로 한국에 나타날 것이라고 신구약(新旧約) 성서(聖書)를 인용, 주장한다.
재미있는 것은 선악과(善悪果)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창세기(創世紀))에 대한 해석. 이브를 유혹한 뱀은 타락한 천사이며,타락한 천사(뱀)와 이브 사이의 불륜(不倫)의 관계, 그리고 이브와 아담 사이의 불륜(不倫)의 관계로 풀이하고 있다.
이 음난(淫乱)행위가 원죄(原罪)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원죄(原罪)를 구속(救贖)하려고 온 예수가 그 구원목적을 실패했기 때문에 메시아의 재림(再臨)이 불가피한것이며, 이제 한국은 그 메시아가 나타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
안병무(安炳茂)(중앙신대(中央神大)교수)박사도 성서(聖書)의 부분적인인용은「성경을 비참한희생물」로 만들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동세(韓東世)(정신과의(精神科医)·서울의대(医大)교수)박사는 문선명(文鮮明)씨나 유효원(劉孝元)씨 등 통일교회(統一敎会) 지도자의 개인적인 성장환경에 관심을 보였다. 현실에서 좌절이 심하고 반항(反抗)이 강한 사람들의 집단적인 에고(ego)를구하려는 욕구충족과정으로서 종교를 파악했다.
따라서 이성(理性)보다는 정서에 호소하려는 요소—열광주의,비논리성(非論理性)—의제거가 기성,신흥을 망라한 종교가 당면한 문제라고 말한다.
<기성교회(既成敎会) 통일교회(統一敎会) 최초(最初)의 대화(対話)>, 조선일보, 1968년 9월 12일.
종교적 논쟁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던 걸까.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에서 반공이데올로기를 “교리”로 도입한다. 냉전 시기 한국, 일본, 미국의 보수 진영과 궤를 같이 하는 강력한 반공 메시지를 통해 주류 사회에 빠르게 침투하고, 국가의 정계 핵심 인물들과 관계를 맺고 지지 기반을 닦는다.
특히 주목되는것은「공산주의(共産主義)를 이론적으로 승복시킬수있는 원리(原理)」로서제시되는 승공이념(勝共理念)이란바로 통일교회(統一教会)의교리(教理)인「원리(原理)」라는 사실이다.
「한국이 낳은 3대신학서(代神學書)가운데 하나」라고 연대신대학장(延大神大學長) 서남동(徐南同)교수가 격찬한 통일교회(統一教会)의 교리(教理)가운데 특이한 점은 ①예수님께서 한국에 재림(再臨)하고 ②인류세계는 이 재림한 예수를 중심으로 하나의 대가족(大家族) 사회로 통일되며 ③이에 따라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최종목표인 지상천국(地上天国)을 세운다는점이다.
최종목표로 설정된 지상천국(地上天国)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수 없으나 이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통일교회(統一教会)가 승공(勝共)운동을 들고나섰고, 이것을 의도했든 안했든간에 국가시책과 상응(相応)한다는 점에서 당국의 직접간접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정치성(政治性) 띠는통일교회(統一教会)>, 조선일보, 1970년 10월 2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