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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사민당, 우생학

1934~1974년, 스웨덴은 의학적, 우생학적, 윤리학적 이유 등 다양한 이유를 내세워 ‘일탈자’로 분류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불임 정책을 추진했다. 정신병자나, ‘정신적으로 취약한 이들’이 재생산되지 못하게 막는다는 취지였다. 여기서 ‘정신적으로 취약한 이들’이란 바로 어머니가 될 자격이 없는 ‘타락한’ 삶을 사는 성적으로 방만한 여성들을 의미했다. 이런 식으로 40여 년에 걸쳐 강제 불임시술을 받은 사람이 무려 6만 3,000명이 넘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172호, <스웨덴식 노스탤지어, 정권창출 방정식>, 비올레트 고아랑.

그러니까 사민당 집권 기간에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사민당 정치인 군나르 뮈르달은 스웨덴이 ‘외국인 이민자들의 물결에 잠식’되고 말 것이라는 이유로 출산 제한 정책에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최근에 읽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공포스러운 대목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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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Politics Review

Red Grandma

『크리티크 M』 제3호에 실린 <세계 여성운동사를 빛낸 사회주의 할매들>은 냉전의 승리자인 서구 자본주의진영이 삭제한 동구권과 남반구 페미니스트들의 업적을 환기시킨다. 양성평등 헌법과, 낙태 합법화, 집단보육시스템, 루드밀라 파블리첸코,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WIDF(국제민주여성연맹), 국제 여성의 해, 멕시코 세계여성대회를 주요 키워드로 그 역사를 요약하면서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과 함께 오늘날에는 “미국과 그 서구 동맹국들에 유리한 방향으로 역사가 왜곡”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던 서구권 여성의 지위가 성장하는 데 컴플렉스와 경쟁심리가 자극제로 작용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세계여성대회의 목표를 놓고 두 진영 사이에서 보인 의견 차이다. 미국과 프랑스 등 서구권의 대표단은 주로 법률적, 경제적 평등 문제에 집중하기를 바랐으나, 동구권, 남반구의 대표단들은 양성 불평등의 근원이 될 만한 모든 문제를 해결을 목표로 제시했다.

한편 남반구 국가를 대표하는 여성들은 경제개발, 식민주의, 인종차별, 제국주의, 전 세계적 차원의 부의 재분배 등에 대한 발언권을 요구했다. 사실상 아파르트헤이트가 시행 중인 남아프리카나, 빈곤, 폭력, 국채 등으로 시름하는 구 식민국가에서 양성평등을 목 놓아 외치는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프리카 국가의 대표들은 인종차별 철폐를 성차별 근절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로 간주했다.

p. 87

서구권의 페미니스트들이 상당한 충격을 받았기도 했던 모양이다.

우리는 북미 페미니스트들이 놀라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다. 그들은 전 세계인이 전부 자신들처럼 가부장이 여성 억압의 주된 원인이라는 신념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제3세계 여성이 미국 페미니스트인 베티 프리단보다 더 가깝게 여기는 인물이 카를 마르크스라는 사실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p. 89

이 글이 서구권의 여성운동을 다소 납작하게 묘사하는 느낌도 들지만 그동안 사각지대에 묻혀있던 어떤 요점을 부각하는 의미에서 충분히 납득가능한 정도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이윤보다 우선시되는, 한층 평등하고, 한층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열망으로 연대한 이들”의 이름이 기억의 저편으로 잊혀지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의 ‘사회주의 할매들(레드 그랜드마)’은 지금과는 또 다른 종류의 세계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굳게 믿었다. 비록 더 이상 그들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그들의 꿈만은 영원하기를 기원한다.

p. 92

기억 저편의 ‘사회주의 할매들’을 발굴하고 그 역사를 복원하는 연구자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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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선거, 단상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는 너무나도 양식화되어 있고 지방선거는 더욱 더 그러해서 스스로를 우파라 칭하는 자들도 좌파라는 자들도, 극우 파시스트들도, 운동권 출신이라는 진보 어쩌고 후보도 번호와 색깔만 다를 뿐 똑같은 뽕짝메들리를 틀어대며 돌아다닌다. 선관위는 유세차량에서부터 선거과정의 세세한 요소들을 규격화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다듬었고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이제 감도 안 잡힌다. 그냥 선거란 그런 것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암울한 생각만 든다. 색깔과 번호 외에는 도무지 구별되지 않는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욕하고 떠들다가 꾸벅 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 누구라도 찍어야 세상이 바뀔 거라고 말하는 게 최선일 리는 없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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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our Politics

52시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과 관련해 “생산직은 (사무직과 달리) 주 52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반발이 있다”며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 대상에서 배제할 수 있다는 태도를 밝혔다.

한겨레, 5월 17일, <이준석 “생산직, 주 52시간 이상 원해”…노동계 “임금구조 왜곡 간과”>

52시간 이상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임금이 낮으니 잔업하고 특근하는 거지. 32시간 정도 일하게 하고 52시간 이상의 돈을 주는 게 바람직한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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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Quote

인구가족부

파시즘은 각자의 성이 자연적 특징을 드러냈던 황금시대를 돌이켜 보면서, 이런 자연적 특성을 포기하는 행위를 근대적 타락과 민족적 쇠퇴의 핵심으로 보았다. 남녀의 정당한 지위가 무너졌기 때문에 남녀 사이에 갈등이 생겨난다. 히틀러에 따르면, “남녀 각자가 자연이 부여한 임무를 충실히 지키는 한, 남녀간 갈등은… 불가능하다.” 모든 반동적 정치와 마찬가지로, 파시즘은 여성의 본질적인 직무는 자녀의 생산이며, 가족 단위 안에 위치해야만 비로소 편안해진다고 생각했다. 파시즘에 있어서 생물학은 진정한 운명이었다. 남성이 전쟁을 하도록 운명지어졌다면, 여성의 운명은 모성이었다. “전쟁이 남자의 것이라면, 어머니다움은 여자의 것이다.”

마크 네오클레우스, 『파시즘』, 이후, p.177.

나치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던 괴벨스는 “여성에게 가장 적합한 장소는 가족이며, 가장 중요한 의무는 국가와 민족에게 아이를 선물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 더 이상 여성 해방의 이름 아래 여성들의 고유한 임무를 등한시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유정희 (2001). 파시즘 국가와 여성. 페미니즘 연구, (1), 11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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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Politics

예언

요즘 뉴스를 훑다 보면 다른 건 몰라도 윤석열 당선인이 청와대라는 ‘공간’에 가진 강한 거부감만큼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그 거부감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모호한 아포리즘으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때문에, 막연히 구전되며 유통되고 있는 가설, 그러니까 그가 어떤 무속인에게서 청와대와 관련한 불길한 신탁을 받았다는 소문을 그저 농담으로 흘려보내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지젝은 라캉의 “진리는 오직 오인을 통해서만 나타난다”는 명제를 설명하면서 윌리암 텐의 SF소설과 서머싯 몸의 희곡 <쉐피>의 한 단락과 함께 오이디푸스 신화를 예로 든다.

다시 말해서 예언은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사람에게 전달되어 그가 그것을 피하려고 함으로써만 진리가 된다.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게 되고 그것을 피하려고 한다. 그런데 예정된 운명이 실현되는 것은 바로 그러한 도망침을 통해서다. 예언이 없었다면 어린 오이디푸스는 자기 부모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살았을 것이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109p.

뭔가 고전적인 비극이 하나 만들어질 것도 같고…

[추가] 재발견한 작년의 에피소드 하나: 유승민 측 “윤석열 대뜸 ‘정법 유튜브 보라’며 손가락질” (한경, 2021.10.06. 고은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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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Press

청와대, 풍수지리

2022년 1월 24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청와대 영빈관을 옮겨야 한다’는 역술인의 권유를 전해 듣고 이에 동조하는 내용이 담긴 통화가 추가로 공개됐다.

한겨레, 김건희 “영빈관 옮길 것” 발언도…무속 논란 증폭에 ‘김씨 등판’ 고심

2022년 1월 27일.

그는 집무실 이전시 광화문 인근의 집회·시위가 전부 금지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집회·시위 금지 문제가 대통령의 투명한 행정보다 더 중요한 이슈겠느냐”고 유권자 기본권을 가볍게 여기는 듯한 발언도 했다.

프레시안, 윤석열 “청와대 이전한다고 나라 크게 바뀌는 건 아니지만…

2022년 2월 11일

청와대의 입지나 내부 구조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공간의 위치나 접근성을 개선한다고 제왕적 대통령제가 개선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청와대 문제의 본질은 대통령의 권력 독점이지 공간적 괴리가 아니다. 연립정부나 협치, 권력 분산 같은 근본적 변화 없이는 한국의 대통령제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왜 대선 후보들은 청와대를 떠나려 할까?

2022년 3월 10일

윤 당선인은 오늘(10일)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철희 정무수석을 접견한 자리에서 “광화문 정부청사를 쓰겠다”라고 말했다고 이양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전했습니다. 이 수석대변인은 청와대를 어떻게 조성할지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으며, 유 실장과 이 수석도 이에 대한 발언은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MBN, 윤 당선인 “광화문 청사 쓰겠다”…’청와대 해체’ 의지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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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log Politics

투기꾼들의 대선

최저임금과 노동시간의 보호장치를 없애겠다는 사람이 당선되었다. 몰상식에는 한계가 없고 극우에게는 거리낄 게 없다. 여가부 해체, 종부세 폐지, 탈원전 정책 폐기 등 퇴행적 슬로건을 내걸었는데 그를 승리로 이끈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른바 ‘정권교체 열망’이다.

후보별 지지이유
출처: 2022년 2월 7일 한겨레신문 기사, https://m.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29980.html

정책, 공약, 자질, 이념 보다는 정권교체 한 가지이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이유를 가장 투명한 언어로 전시하던 공간은 부동산카페들이었다. ‘집으로 재미 좀 보려면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을 누구나 했다. 윤석열은 주택공급을 늘리고 재건축과 재개발을 확대하며 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겠다는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신호를 계속해서 던졌고 투기에 진심인 소시민들의 천박한 욕망이 이를 받았다. 민주당정부가 의도적으로 집값을 폭등시켰고 이를 안정시키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투기꾼과 워너비들은 집값이 안정되길 바라지 않는데, 윤석열이 내놓은 정책방향이 ‘안정’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잘 파악하고 있기에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할 수 있다.

윤석열의 당선이 확정되자 이런 광고문자가 날아온다.

…… 국민의힘 윤석열 차기 대통령 당선되어 윤석열 관련 테마주 이번 주 안에 무조건 최소 800% 보장하겠습니다. 안철수후보가 윤석열후보와 단일화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 있습니다. 그 이유 때문에 관련 테마주가 폭등할 예정인데요. …… 공개하는 이유는 500분에 한해서 다같이 그 종목을 탑승하신다면 최소 600% 폭등하는 이유입니다. (후략)

대선 직후 받은 광고문자 내용

21세기 남한에서 대통령선거란 대체 어떤 의미인가.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을 들여다 본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