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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한 쌍

여우 한 쌍이 눈밭을 헤집네,
신방 차린 토굴가를 쿵쿵 밟으며,
밤이면 그 억센 사랑이 주위에
타는 목마름을 핏자국처럼 뿌리네.

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1926~1984』, 그린비, 109p.

이 시의 제목은 원래 「웅덩이에 고인 희미한 빛」이며 미셸 푸코가 죽기 나흘 전인 1984년 6월 21일에 르네 샤르가 썼다고 한다. 샤르는 푸코의 죽음을 슬퍼하는 폴 벤느에게 이 시를 선물한다. 벤느는 “그때 우리들은 푸코를 ‘푹스'(여우)라고 불렀죠”라며 감동했다고 한다. 시는 푸코의 장례식에서 낭송된다.

푸코는 르네 샤르의 시를 애정했고 여러 저작에 그 흔적을 남겼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런 교류를 맺지 못했다고 한다. 샤르 역시 푸코를 매우 존경했다고 한다.

벌써 형성되기 시작한 전설과는 달리 샤르와 푸코 사이에는 이처럼 사후의 묘한 인연밖에는 없다. “그 전설이 사실이라면 재미있겠지만 그러나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좀더 정직한 일이 될 것이다”라고 폴 벤느는 르네 샤르에 관한 글 속에서 말했다.

같은 책. 109p.

서로를 가슴 깊이 존경했으면서도 직접 만나지는 못했던 위대한 두 지성 이야기가 몹시도 매혹적이다. 철학자는 자신의 저작에 시인의 싯구를 새겨넣었고 시인은 철학자의 무덤에 시를 바친다. 눈밭에 타는 목마름을 핏자국처럼 뿌리는 억센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