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캠페인을 결정지은 주장은 복잡하지 않았다. 캠페인의 집중 공략 사항을 담은 주요 공약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몇 주 동안 버스 옆면을 도배한 그 주장은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는 EU에 매주 3억 5000만 파운드를 보낸다. 이 돈으로 국민 의료보험(NHS)을 지원하자.”
제임스 볼,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215p.
매주 NHS에 3억 5000만 파운드를 지원하겠다는 주장은 근본적으로 정치적 개소리였다. 어느 정치인이나 정당도 이 주장을 제대로 책임지지 않았고, 투표로 심판하지도 못했다. 이 수치를 쓴다고 질책하는 공식적인 규제기관이나 중재기관도 없었고, 세부적으로 따지다 보면 탈퇴 캠페인이 쓰는 수에 휘말리기 일쑤였다. 도발적인 주장을 던지는 전략은 캠페인 내내 이어졌다.
같은 책, 220p.
투표 전 마지막 주에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모리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탈퇴진영의 주장이 몇 주에 걸쳐 그 신뢰성을 의심받았음에도 응답자의 78퍼센트가 매주 3억 5000만 파운드씩 EU에 보낸다는 탈퇴캠프의 주장을 들은 적이 있고 47퍼센트는 이 주장을 사실로 믿는다고 답했다. 또한 45퍼센트는 터키가 곧 EU에 가입한다고 믿었다.
같은 책, 230p.
정치에 큰 관심이 없고 참여하지도 않는 사람을 다소 모욕적이지만 ‘정보 수준이 낮은 유권자’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 집단이 어떤 메시지에 반응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캐머런 전 총리의 미디어 담당이었고 BBC 방송 중역이었던 크레이그 올리버는 이 집단과 관련한 정서는 오랜 좌절이라고 보았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팬이자 호러필름 덕후로서, 새로 나온 영화 <Nightmare Alley>를 보기 전에 원작을 먼저 읽어 보기로 마음 먹었다. 구글플레이에서 이북으로 구입했다.1 구글에서 구입하면 별도의 앱을 설치하지 않더라도 브라우저에서 바로 읽을 수 있어서 좋다. 파이어폭스에서도 문제없이 동작한다.
윌리엄 린지 그레셤의 책은 처음 접한다. 예상대로 술술 읽혔다. 중간에 두어 번 끊고 반나절 만에 끝을 봤으니. 책의 서문은 동료 하드보일드 작가였던 닉 토시즈가 썼는데, 소개글들이 종종 그러하듯이 작품의 내용을 직간접적으로 누설하고 있을까봐 과감하게 건너 뛰고 진행했다.
본편은 교묘하게 순서를 섞어놓은 스물두 장의 메이저 아르카나, 그러니까 타로카드를 소제목으로 쓰고 있다. 각 챕터가 한 장의 타로카드인 셈이다. 첫 번째 카드인 바보(The Fool)에서 시작해서 마술사, 여사제, 세계 등등을 거치고 마지막 스물두 번째에는 매달린 남자(The Hanged Man)로 끝난다. 프로이트 정신분석과 오컬트에 대한 작가의 관심도 읽을 수 있지만 역시 타로카드가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각 카드에 담긴 오컬트적 의미 및 해석을 잘 알고 있다면 더 풍부하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잘 모르더라도 모든 챕터는 카드 도상과 이름, 간략한 핵심 정보를 던져주고 시작하므로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22장의 메이저 아르카나와 소제목을 자세히 비교해 보면 미묘하게 다른 두 개의 제목이 눈에 띈다. 여섯 번째 소제목은 사자의 부활(Resurrection of the Dead)인데 대응하는 타로카드는 심판(Judgement)이다. 기독교의 종말론에 의하면 죽은 자들이 다시 부활하여 마지막 심판을 받으므로 크게 이상한 변형은 아니다. 열여덟 번째 소제목은 시간(Time)이고 타로카드는 절제(Temperance)이다. 이건 연결이 잘 안 된다. 네러티브를 위해 다소 무리하게 변형시킨 게 아닌가 의심된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챕터, <바보>는 주인공 스탠 칼라일이 카니발 프릭쇼의 한 부스에서 뱀과 함께 지내며 닭의 목을 물어뜯는 기인(geek)을 관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바보>는 기인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스탠 칼라일이기도 하다. 소설을 끝까지 진행하다 보면 확신하게 된다. 타로카드 <바보>는 히브리 문자 알레프(א)와 대응한다. 뜬금없이 떠오른 사실이지만, 보르헤스는 자신의 단편에서 지구상의 모든 지점을 포함하는 공간 속의 한 지점을 알레프로 칭한 바 있다.2물론 이 둘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우연일 것이다. 바보 카드에 내러티브 전체가 응축되어 있다. “알록달록한 광대 옷차림으로 세상 끝 낭떠러지 위에서 눈을 감고 걷는 자”로 정의되어 있는 <바보>란 긱쇼의 알콜중독자이기도 하고 그를 혐오하는 주인공이기도 하며, 소설 밖의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기인이라는 우리말 번역이 적절한 지 잘 모르겠다. 닉 토시즈의 서문에는 영단어 geek 과 관련해 꽤 재미있는 사연이 소개되고 있다.
카니발 업계에서 살아 있는 닭이나 뱀의 머리를 물어뜯는 야생 인간을 뜻하는 ‘geek(바보, 얼간이, 잘 속는 사람을 뜻하는 ‘geck’에서 유래했는데 이 단어는 적어도 16세기 초반부터 19세기까지 사용되었다)’이라는 단어는 그레셤이 <나이트메어 앨리>에서 소개하기 전에는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1947년 11월 당시 인기를 끌었던 냇 ‘킹’ 콜 트리오는 <The Geek>이라는 음반을 출반했다.
닉 토시즈의 서문
Nerd, 덕후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는 오늘날의 용법으로 자리잡기까지 꽤나 우여곡절을 겪어 왔을 이 단어의 운명을 저 당시의 그레셤이 짐작이나 했을까.
몇 년 전 심심풀이로 타로점을 봐주곤 하던 직장동료분이 타로점의 가치에 대해서 평했다. 타로패가 미래를 예언하거나 거기에 어떤 초현실적인 힘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선택지를 취해도 상관없을 소소한 선택의 기로에서 간단히 마음 정하기 힘들 때 동전이나 주사위 보다는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무작위한 방향을 가리키면서도 독특하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의미와 동기를 부여한다. 꽤 재미있는 설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