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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

우리 집 옆으로는 작은 개울이 흐른다. 집의 경계는 마른 돌무더기뿐이라 그저 잡초만 무성하던 곳이었다. 재작년 가을 무렵, 그 거친 돌무더기 속에서 두 그루의 나무가 어느덧 의젓하게 자라나 있음을 눈치챘다.

작은 쪽은 가시 없는 잼피나무였고, 그보다 큰 쪽은 팽나무였다. 어느 고마운 새가 먼 길을 날아와 씨앗을 선물하고 간 모양이네, 하며 정성껏 가지를 치고 모양을 매만져 주었다. 팽나무 열매는 새들이 유독 좋아한다고 했다. 자라는 속도도 실로 경이로웠다. 작년 여름, 집 경계에 짙고 시원한 그늘이 생겼다. 올해는 더 큰 그늘이 생길 것이다.

팽목항(彭木港)도 팽나무가 많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세월호 12주기, 오토바이로 4시간을 달렸다. 진도에 들어서자 아직 덜 떨어지고 남은 화사한 벚꽃, 이제 피어나기 시작한 철쭉들이 반겼다. 팽목항까지 가는 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겸손한 팽나무들도 여럿 지나쳤을 것이다. 눈썰미 나쁜 인간이 미처 식별하지 못했을 뿐.

바닷바람이 여전히 사나웠다. 바람 잘 날 없는 그 쓸쓸한 항구, 분향소는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세상에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토록 외롭고 아픈 곳 이름이 팽목이라니… 새들이 사랑하여 여기저기 씨앗을 퍼뜨리고, 지친 이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내어주는 팽나무.

hurd에 의해

Living at the mercy of the wind and my own curio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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