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Music

실천으로서 음악

어느 다큐멘터리 소개 기사를 통해 접하게 된 이름 바버라 데인. 아마 살면서 한두 번은 들어봤을 텐데 전혀 기억에 없다.

1930년대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포크 기타리스트와 가수로 음악 경력을 시작한 데인은 시카고와 뉴욕의 블루스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이후 재즈와 전통 음악, 그리고 영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며 자신의 음악적 영역을 확장했다. 밥 딜런, 존 바에즈, 피트 시거 등 전설적인 음악가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고, 루이 암스트롱, 제인 폰다, 도널드 서덜랜드 등 문화적 아이콘과 함께 세계를 여행하며 공연했다.

그러나 그는 무대 위의 스타로 만족하지 않는다. 베트남 전쟁 시기 GI 운동에 참여했고, 쿠바 혁명 이후 쿠바에서 공연한 최초의 미국 예술가가 되었으며, 북베트남에서도 그녀의 목소리를 전했다.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 행동했고, 이는 FBI의 지속적인 감시와 같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았다.

음악이 과연, 단지 예술이기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그는 진실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초창기의 블루스 음악도 좋지만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늘어놓듯이 부르는 포크도 매력적이다. <나는 자본주의 체제가 싫다>는 곡을 듣다 보면 새삼 느끼게 되는데, 포크는 역시 감상하는 음악이 아니다. 듣고 깨닫는 음악, 함께 부르는 실천이다. 그는 혁명가였다.

카테고리
Daylog Music

꿈, 불안, 죽음

핑크 플로이드의 <Julia Dream>.

핑크 플로이드의 멤버들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배경을 지녔지만, 로저 워터스의 경우 조금 결이 다르다. 그의 아버지는 교사였으며 공산주의자였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보긴 어렵지만, 그런 가부장이 만든 가정의 분위기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훗날 그의 곡에 스며든 반전과 사회 비판적 메시지의 근원을 탐색해본다면, 이 배경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사이키델릭이 지배하던 시대, 음악에 모든 것을 건 불온한 젊은이가 써 내려갔을 법한 곡이 바로 이 곡이다. 꿈속을 부유하듯 이어지는 모호한 상징들, 종잡을 수 없는 흐름 속에서도 마디를 이루는 시적인 가사. 어쿠스틱 기타의 리듬 위로 멜로트론이 뿜어내는 몽환적 음색의 선율이 데이비드 길모어의 차분한 보컬과 코러스를 이루다가, 끝내 불안과 죽음의 그림자에 잠식되듯 (혹은 저항하듯), 신경질적이고 불길한 노이즈 속으로 해체 (혹은 지양) 된다.

<The Dark Side of the Moon> 이후의 핑크 플로이드에 익숙한 나에게 이전의 앨범들은 완전히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빽판을 구하거나 알음알음 테이프를 복사해서 찾아 듣던 시절에는 꿈도 못 꿨던 호사가 지금은 가능하다. 그래서 어느덧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 되었다. 음악을 감상한다는 게 하나의 의식이자 체험이던 시대는 가버렸지만, 가끔은 한가하게 음악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카테고리
Hack

ctrl pnbfae

Emacs를 사랑하던 사람이 ctrl+pnbfae 단축키를 버릴 수는 없다. 맥북에서 스크리브너로 글을 쓰다보면, 한글 입력 중인 상태에서 ctrl+actrl+ㅁ 으로 인식되어 단축키가 무시되는 문제가 생긴다. 영문입력 상태로 변경해야 제대로 인식되는데 이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적절한 해법을 찾아보다가 결국 Karabiner-Element를 설치.

$ brew update
$ brew install --cask karabiner-elements

추가 설정.

  • Simple Modifications ➡️ Logi POP Keys ➡️ caps_lock ➡️ left_control
  • Complex Modifications ➡️ Add predefined rule
    • Left_Ctrl + p/n/b/f/a/e to up/down/left/right/home/end
    • Change Won to grave accent (`) in Korean layout
카테고리
Daylog ETC

어린 왕자

기억 속 첫 크리스마스 선물은 내가 일곱 살이던 해, 셍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였다. 학교 교육조차 충분히 받지 못했던 우리 집 산타할아버지의 눈엔, 아마도 표지도 예쁘고 삽화도 있는 그 책이 일곱 살 꼬맹이에게 딱 맞아 보였을 것이다. 나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까지 보고 금세 책을 덮어버렸다. 그렇게 책은 시간이 지나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사라졌다. 이후 산타할아버지는 몇 해에 한 번씩 띄엄띄엄 선물을 주셨는데, 그건 아마 내가 종종 나쁜 아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던 해, 은밀히 ‘우정’의 편지를 주고받던 교회 여사친이 여우 이야기를 인용한 일이 있었다. 어릴 적 받았던 첫 크리스마스 선물이 문득 떠올랐다. 도서관으로 달려가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당시의 나는 그런 철학적인 동화에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편지에 인용하기 좋은 구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읽었던 것 같다. 그때 선물할 책은 반드시 내가 먼저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을 것이다.

선물 고르는 센스가 부족하고, 고집이 세며 권위적이고, 일하지 않을 때는 늘 술에 취해 있었지만, 자식들에게만큼은 언제나 따뜻했던 우리 집 산타할아버지는 이제 뇌졸중으로 몸이 불편해지셨다. 얼마 전 찾아뵈었을 때,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를 꺼내 보았는데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하긴 그깟 크리스마스가 뭐라고 아직 기억하겠는가. 2회차 산타란 없다. 누구나 산타는 처음이고 이런저런 실수를 반복하다가 할만하면 은퇴하고 마는 것이다. 은퇴한 산타는 나무늘보처럼 외롭게 느릿느릿 살다가, 어린 왕자처럼 자기 별로 홀연히 떠나버릴 것이다. 그렇게 누구에게나 인생의 어느 순간, 산타 없는 크리스마스가 찾아오는 법이다.

어린 왕자의 삽화. 작품의 마지막 장, 사막에서 조용히 쓰러져 주저앉은 어린 왕자를 그린 그림이다. 하늘에서는 하나의 별, 아마도 그가 돌아가게 될 별이 빛을 내려 쬐고 있다. 어린 왕자 앞에는 한 떨기 꽃이 피어 있다.
카테고리
Politics

리버럴, 단상

신자유주의 무대 위에서,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라는 레이블은 이미 그 빛을 잃었다. 카멀라 해리스가 유세 기간 내내 주머니 속 부적처럼 지니고 다닌, 전쟁범죄자 딕 체니의 망령이 강렬히 증언한다. 부르주아 ‘정치’란 이제 더 이상 실제가 아니다. 화면 속에서 팔려나가는 환상들로 대체된다. 에이전트, 홍보 담당자, 마케팅 전문가, 프로모터, 대본 작가, 텔레비전과 영화 제작자들, 비디오 기술자, 컴퓨터 그래픽 아티스트, 사진가, 경호원, 의상 컨설턴트, 피트니스 트레이너, 여론 조사원, 방송 진행자, 텔레비전 뉴스의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연기같은 환영이다.

화려한 조명 너머 현실은 기만적인 정적 속에 파묻혀 있다. 부는 공정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탐욕스러운 과두제 엘리트들이 모든 부를 움켜쥐고, 노동계급의 다수는 조합과 권리를 박탈당한 채 만성적인 빈곤과 불완전 고용의 늪 속으로 떠밀린다. 누군가 말했듯, 그들의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로 가득 찬 비상사태” 그 자체다. 절망은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공백이다. 공동체가 해체되고 고립이 일상이 된 세계에서, 사람들은 끓어오르는 마그마처럼 출구를 찾아 헤맨다. 그들에게 미래는 두려움의 그림자이며, 빈곤은 타오르는 고통이다.

자욱한 연기와 환영을 뚫고 나타나 기적과 묵시적 구원을 약속하는 자들이 잠깐 권력을 움켜쥐지만, 그들 역시 하나의 ‘증상’에 불과하다.

뱀이 자신의 꼬리를 삼킨다.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가능하겠는가?

카테고리
Film

Yo ho ho (1981)

자코 헤스키야(Зако Хеския) 감독의 1981년 작품 <Yo ho ho(Йо-хо-хо)>가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이 영화는 20년 후 인디아 출신의 감독 타셈 싱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연출로 리메이크되었다. <The Fall (2006)>. 언제 내려갈지 모르겠으나 일단 갈무리해 둔다.

카테고리
Politics Press Quote

跳梁跋扈

‘도량’은 ‘거리낌 없이 함부로 날뛰어 다님’이라는 뜻으로 ‘한서’, ‘장자’ 등에 쓰였고, ‘후한서’에 등장하는 ‘발호’는 권력을 남용해 전횡을 일삼는 장군을 비판할 때 쓰였다. 도량발호는 이 둘을 합친 말이다.1<교수들 선정 올해의 사자성어 ‘도량발호’…“권력이 함부로 날뛴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171908.html

후보였던 사자성어도 재미있는데, 석서위려(碩鼠危旅) ➡️ 머리가 크고 유식한 척하는 쥐 한 마리가 국가를 어지럽힌다는 의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의 촛불이 타오르고 국회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던 2016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군주민수’(君舟民水)였다. ‘강물(백성)이 화가 나면 배(임금)를 뒤집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듬해 2017년에는 박 전 대통령의 파면 이후 새 정부가 적폐청산에 나섰다는 점을 들어, ‘사악한 것을 부수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의 ‘파사현정’(破邪顯正)이 선정됐다.2같은 글

footnote
카테고리
Politics Press Quote

볼프강 슈트릭

2024년 11월 28일 뉴욕타임즈에 올라온 크리스토퍼 콜드웰의 에세이 <This Maverick Thinker Is the Karl Marx of Our Time>는 뉴레프트저널에 기고한 에세이들로 유명한 독일의 사회경제학자 볼프강 슈트릭를 매우 상세히 소개한다.

슈트릭은 신자유주의 기획에 내포된 역설에 대해 명확한 통찰을 제시한다. 글로벌 경제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오히려 제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옹호자들이 말하는 자유 시장이란 규제가 완화된 시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탈규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보기보다 훨씬 복잡하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규제란 인민들이 자율적으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는 주권적 권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사회가 민주적일수록 그 사회의 특성이 독특해지며, 경제적 규칙들이 서로 달라질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기업들은 적어도 글로벌화 측면에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자본과 상품은 국경을 넘어 마찰 없이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관된 법체계가 필요하다. 결국 민주주의는 일정 부분 양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민주주의와 글로벌 자본주의가 일으키는 모순은 제국주의의 횡포로 이어지게 되는데, 제국 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이 글로벌화 규칙을 만드는 미국과 서유럽 사회 내의 지역 수준에서도 발생한다. 민주주의와 대립하는 경제 정책들이 수립되고 불공정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글로벌 경제”는 일반 대중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공간이다. 슈트릭은 1970년대 이후 좌파 정당들이 이러한 문제를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산업 노동자를 중심으로 노동자 권리와 생활 수준을 주된 관심사로 삼았던 기존의 구조에 인권과 ‘깨어있는 정신'(wokeism)이라는 원칙 집합과 같은 가치 체계를 홍보하는 데 관심을 둔 지식인들이 침투하여 전복시키는 것을 허용했다.

슈트릭은 민주주의를 옹호한다고 주장하는 엘리트들에 의해 민주주의가 저지되고 있기 때문에 위기에 처했지만 일반 대중 사이에서는 민주주의가 활발히 살아 있다고 본다. 지난 20년 동안 적어도 진정한 대중의 정서를 반영하는 후보를 내세우는 정당의 경우 투표 참여율이 가파르고 꾸준히 상승했음을 지적한다.

좌파는 포퓰리즘을 받아들여야 한다. 포퓰리즘은 단지 글로벌리즘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투쟁에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글러벌리즘이 스스로의 모순에 의해 붕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모든 진지한 정치적 움직임은 어떤 형태로든 포퓰리즘적일 수밖에 없다.

카테고리
Book Quote

창조의 정신분석

에릭 프랭크 러셀의 짧은 단편 <The Sole Solution>을 슬라보예 지젝이 인용하길래 찾아봤다.

https://archive.org/details/Fantastic_Universe_v05n03_1956-04/page/n109/mode/2up

그는 어둠 속에서 곱씹었다.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떤 목소리도, 속삭임도, 손길도 없었다. 다른 존재의 온기도 없었다. 어둠. 고독. 온통 검고 고요하며 아무것도 섞이지 않는 데서 오는 영원한 얽매임. 사전 정죄 없는 감금. 죄 없는 형벌. 벗어날 방법을 찾아내지 않는 한 견뎌야만 하는 견딜 수 없음. 바깥에서 오는 구출의 희망이란 없다. 다른 영혼, 다른 마음에 슬픔이나 연민, 동정이란 없다.

그리하여 그는 해법을 꿈꾼다.

가장 쉬운 탈출은 상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구속복에 갇힌 이는 자신만의 꿈나라를 모험하며 신체의 덫에서 탈출한다. 하지만 꿈으로는 충분치 않다. 꿈은 현실이 아니고 지나치게 짧기 때문이다. 얻어내야 할 자유는 진짜여야 하고 오래도록 지속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꿈에서 엄정한 현실, 영원히 지속될 만큼 치밀하게 만들어진 현실을 만들어야 했다.

모든 세부 사항을 계획하는 오랜 노력 끝에 실천할 때가 도래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실험을 시작해야 한다. 그는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어둠을 응시하며 말했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

카테고리
ETC

벨마, 오즈

레딧에 올라온 매우 흥미로운 (Velma characters parallel wizard of oz).

벨마의 빨간 메리 제인
도로시 → 벨마의 빨간 메리 제인 한 켤레
여성성의 신화를 읽는 프레드
허수아비 → 여성성의 신화를 읽고 뇌를 얻는 프레드
스스로에게 헌신하기로 결단하는 노빌
사자 → 스스로에게 헌신하기로 결단함으로써 용기를 얻는 노빌
양철나무꾼: 대프니
양철나무꾼 → 벨마와 키스함으로써 사랑을 얻은 대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