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Book

주체의 분리

블랑쇼에 관한 글을 읽다가, 데리다가 블랑쇼의 짧은 단편 《내 죽음의 순간 L’instant de ma mort》에서 일어나는 주체의 분리에 관해 주목하고 그에 관한 강연을 했음을 알게 되었다. 블랑쇼의 단편은, 1994년 노년의 블랑쇼가 50년 전의 자신(어떤 ‘젊은이’)이 1944년 까엥(Quain)에서 경험한 죽음의 순간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국내에는 아직 출판된 바 없는 듯하여, 영문판을 찾아보고 한국어로 옮겨 봤다.


나는 한 젊은 남자를 기억한다 — 아직 젊음을 간직한 한 남자. 죽음 자체에 의해, 그리고 어쩌면 불의(不義)의 오류로 인해 죽음을 면한 남자였다.

연합군은 마침내 프랑스 땅에 발을 디뎠다. 이미 패배한 독일군은 무의미한 잔혹함으로 허망한 저항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 대저택 — 사람들은 그것을 ‘성(城)’이라 불렀다 — 그 문이 조심스럽게 두드려졌다. 나는 그 젊은 남자가 문을 열어, 도움을 요청하러 온 낯선 방문객들을 맞이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날카로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모두 밖으로 나와!”

한 나치 장교가, 너무나도 유창한 프랑스어로 명령했다. 그는 가장 연로한 이들을 먼저 내보내고, 이어서 두 명의 젊은 여인에게도 같은 명령을 내렸다. “나와! 나와!” 이번엔 그의 목소리가 더욱 사나워졌다. 그러나 젊은 남자는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마치 사제가 제단으로 나아가듯 묵직한 걸음으로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장교는 그를 거칠게 흔들어 깨우며, 땅에 흩어진 탄피와 총알을 가리켰다. 분명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것이다. 이곳은 더 이상 평온한 터전이 아니라,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그 순간, 장교는 알 수 없는 언어로 목이 멜 듯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이미 한층 늙어 보이는 남자의 코앞에 탄피와 총알, 수류탄을 들이밀며 또렷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것이 네가 만들어낸 결과다.”
나치 장교는 부하들을 정렬시켰다. 그들은 규율에 따라 인간이라는 표적을 향해 조준했다. 그 순간, 젊은 남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적어도 제 가족만이라도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 그렇게 해서 아주 느리고도 긴 침묵의 행렬이 형성되었다. 먼저 아흔네 살의 고모, 그리고 비교적 젊은 그의 어머니, 이어서 그의 누이와 제수까지. 마치 모든 것이 이미 끝난 듯한 고요 속에서, 그들은 조용히 실내로 돌아갔다.

나는 알고 있다 — 나는 정말로 알고 있다 — 이미 독일군의 총구가 그를 겨냥하고, 최후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 순간, 그가 갑자기 놀라운 가벼움을 느꼈다는 것을. 그것은 일종의 황홀경이었을까? 그러나 결코 행복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환희? 아니면, 죽음과 죽음의 만남 그 자체였을까?

내가 그의 입장이었다면, 굳이 분석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그 순간 갑자기 무적이 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죽었으나 — 불멸한 존재. 어쩌면 그것은 황홀경이었을까. 그러나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통받는 인류에 대한 연민, 그리고 영원하지 않음에서 오는 기쁨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죽음과 은밀한 우정을 맺었다.
바로 그 순간 — 현실로의 갑작스러운 귀환. 가까운 곳에서 치열한 전투의 굉음이 폭발했다. 저항군 마키(Maquis)의 동지들이 그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알고 구출 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중위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그러나 독일군 병사들은 여전히 정렬된 상태로 멈춰 서 있었다. 그들은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침묵 속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병사들 중 한 명이 다가왔다. 그리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독일인이 아니다. 러시아인이다.” 그리고 묘한 웃음을 띠며 덧붙였다. “블라소프 군대다.” 그 병사는 손짓으로 그에게 사라지라고 했다.

나는 그가 여전히 가벼움의 감각 속에서 멀어져 갔다고 믿는다. 그는 결국 먼 숲, ‘히스 숲(Bois des Bruyères)’에 도착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익히 아는 나무들 사이에 몸을 숨겼다. 그렇게 빽빽한 숲 속에서 한참이 지난 후, 문득 현실 감각이 돌아왔다. 사방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농가들은 불타고 있었다. 불길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모든 것이 타오르고 있었다. 조금 후 그는 알게 되었다. 세 명의 젊은이들이 — 농부의 아들들로, 전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던 이들이 — 오직 젊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길 위에도, 들판에도 부풀어 오른 말들의 시신이 널려 있었다. 그것들은 이 전쟁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를 침묵 속에서 증언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던 것일까? 나치 중위가 돌아왔을 때, 그는 젊은 성주의 실종을 깨달았다. 그런데도 어찌 된 일인지, 분노와 격노가 성을 불태우는 쪽으로 향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성(城)’이었기 때문이다. 성의 정면에는 한 해가 새겨져 있었다. 1807. 그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을까? 그 해는 예나(Jena) 전투가 벌어진 해였다. 나폴레옹이 작은 회색 말을 타고 창밖을 지나갈 때, 헤겔(Hegel)은 그를 바라보며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세계정신을 목격했다.” 그러나 거짓과 진실이 뒤섞인 역사. 헤겔은 또 다른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랑스 군대가 자신의 집을 약탈하고 유린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헤겔은 ‘경험적 사실’과 ‘본질’을 구분할 줄 알았다. 그리고 1944년, 나치 중위는 농가들이 받을 수 없었던 ‘존중’ 혹은 ‘고려’를 이 성 앞에서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은 철저히 수색을 했다. 그들은 금품을 약탈했다. 별채에 있는 ‘고층 방(la chambre haute)’에서 몇 가지 문서와 두꺼운 필사본을 발견했다. 그것에는 어쩌면 전쟁 계획이 담겨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침내, 그들은 떠났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있었다. 그러나 성만은 남아 있었다. 귀족들은 살아남았다.

그 순간부터, 젊은 남자는 아마도 불공평함의 고통을 겪기 시작했을 것이다. 더 이상 황홀은 없었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는 단 하나 — 심지어 러시아인들의 눈에도 그는 귀족 계층에 속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이것이 전쟁이었다.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학살의 잔혹함 속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총성이 아직 울리지 않았던 바로 그 순간까지도, 그가 느꼈던 가벼움의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정확히 번역할 수 없다. 삶에서 해방된 감각일까? 무한이 열리는 순간일까? 그것은 기쁨도, 고통도 아니었다. 두려움이 사라진 상태도 아니었다. 어쩌면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한 걸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안다. 아니, 나는 상상한다. 그 분석할 수 없는 감각이 그의 남은 삶을 변화시켰으리라는 것을. 마치 그 밖의 모든 죽음이, 이제 그의 내면에 있는 죽음과 맞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처럼. “나는 살아 있다. 아니, 너는 이미 죽었다.(Je suis vivant. Non, tu es mort.)”


훗날, 그는 파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말로(Malraux)를 만났다. 말로는 그에게 자신이 포로가 되었지만, 신분이 발각되지 않은 덕분에 탈출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한 원고를 잃어버렸다. “그건 예술에 대한 단상들에 불과했어. 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지. 하지만 잃어버린 원고는 절대 다시 같은 것이 될 수 없어.” 폴랑(Paulhan)과 함께 원고를 찾아보려 했지만, 그것은 결국 허사였다.

그러나 무엇이 중요한가. 이제 오직 가벼움의 감각만이 남아 있다. 그것은 곧 죽음 그 자체이거나,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나의 죽음이라는 순간이었다.

카테고리
Film Quote

운동의 서사

<Palestine Exception>은 잰 해이컨제니퍼 루스가 공동 감독한 작품으로, 2024년 미국 대학 캠퍼스를 휩쓴 팔레스타인 연대시위와 이에 대한 억압적인 반발 — 그들은 이를 신매카시즘(New McCarthyism)이라고 부른다 — 을 다룬다. 잰 해이컨은 포틀랜드 주립대학교 심리학 명예교수이자 임상 심리학자이다.

근미래에 이 영화를 직접 보기는 힘들겠지만, 카운터펀치에 인터뷰가 실렸기에 읽어봤고1유료 구독자에게만 열리는 기사라 링크 생략, 영화가 다루는 주제와는 별개로 그가 임상 심리학자로서 한 답변이 흥미로워서 기록해 둔다.

저는 심리학자로서, 사람들이 어떤 것을 주목했다가 외면하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제 영화에서 억압된 역사나 기억을 회복시키는 것뿐 아니라, 처음에는 거부하거나 불안감을 느끼는 것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는지 탐구합니다. 영화가 피상적인 영감을 주거나 “궁극적 승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고 진중한 접근 방식을 취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여기에는 싸울 가치가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전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개인 영웅 서사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영화는 한 개인이 도전을 받고, 취약성이 드러난 후 승리하거나 비극적으로 몰락하는 이야기를 다루곤 하죠. 그러나 저는 집단적으로 무언가를 이루는 것, 그룹 간의 관계적 측면에 관심이 있습니다. 단지 윤리적, 정치적 헌신 때문에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헌신 때문이죠. 제 영화들이 학생들이든, 어른이든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급진적인 삶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하도록 영감을 주었으면 합니다. [웃음] 그리고 실현 불가능할지라도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밀어붙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저는 활동가들의 기쁨과 실망을 모두 영화에 담아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 <The Strawberry Statement>나 <자브리스키 포인트> 급진적인 캠퍼스 영화들과 어떻게 비교될 수 있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다큐멘터리와 픽션 영화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다큐멘터리에는 방대한 자료와 아카이브를 선택하고 편집하는 주관적인 창작 과정이 있지만, 동시에 실제 사건을 가능한 한 사실적으로 재현하려는 관객과의 약속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제 다큐멘터리는 현장 연구와 참여적 행동 연구 방법에서 나왔으며, 어려운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집단과 많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저는 가장 극적이거나 영웅적인 이야기에만 집중하지 않고, 집단적 경험을 잘 나타내는 장면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한 것에 대한 경험적 충실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많은 픽션 영화, 특히 역사를 다루는 내러티브 영화는 여전히 가장 극적인 캐릭터에 관심을 두는데, 종종 남성 중심의 이야기입니다. [웃음] 이 점이 다르죠.

또한 과거의 캠퍼스 급진주의를 향한 향수가 있습니다. 역사를 현재와 연결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많은 캠퍼스, 제 학교인 포틀랜드 주립대를 포함해, 베트남 전쟁 시기에 건물을 점거했던 반전 활동가들을 기념하는 명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학생들의 급진적인 행동을 칭송했던 리더들이 오늘날 학생들이 하는 행동에는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footnote
  • 1
    유료 구독자에게만 열리는 기사라 링크 생략
카테고리
ETC Quote

트로츠키의 꿈

트로츠키는 1935년 6월 25일 밤, 죽은 레닌과 대화를 나누는 꿈을 꾼다.

“어젯밤, 혹은 정확히 말하면 오늘 새벽, 나는 레닌과 대화를 나누는 꿈을 꾸었다. 주변 상황으로 보아, 그것은 한 배의 삼등실 갑판에서 이루어진 듯하다. 레닌은 침대에 누워 있었고, 나는 그 옆에 서 있거나 앉아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내 병세에 대해 걱정하며 물었다. ‘신경 피로가 누적된 것 같군. 당신은 쉬어야 해…’ 나는 피로를 빨리 회복하는 데 타고난 활력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문제가 더 깊은 곳에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레닌은 단어를 강조하며, ‘진지하게 여러 의사들에게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미 많은 상담을 받았다고 답하며, 1926년 베를린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레닌을 바라보던 중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이 생각을 빨리 떨쳐내 대화를 끝내려 했다. 내가 베를린에서의 치료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끝마쳤을 때, ‘이것은 당신이 죽은 후의 일이었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대신 ‘당신이 병에 걸린 후의 일이었소’라고 말을 바꿔 말했다.”

레닌은 자신의 죽음을 모르고 있으며 트로츠키는 그의 죽음을 알리지 못한다. 그러니 레닌은 계속 살아있는 셈이다. 이런 환상적인 얘기 좋아한다.

카테고리
Quote

트라우마, 내러티브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주체가 보고하는 개개의 사실들이 가진 결함들 그 자체가 그것의 참됨을 증언해주는 것이다. 보고되는 내용이 보고되는 형식을 오염시켰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

셈프룬1https://ko.wikipedia.org/wiki/%ED%98%B8%EB%A5%B4%ED%97%A4_%EC%85%88%ED%94%84%EB%A3%AC의 소설2그의 첫 소설 <Le grand voyage>에서 제라르는 부헨발트에 트럭 한 대 분량의 폴란드 유대인들이 도착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들은 화물 열차 한 칸에 거의 200명씩이나 쑤셔 넣어진 채 춥디추운 한겨울에 음식도 물도 없이 며칠씩 끌려와야 했다. 도착했을 때는 시쳇더미 한가운데서 온기를 유지할 수 있던 15명의 어린아이를 뺀 모든 사람이 얼어 죽어 있었다. 아이들을 열차에서 내리게 한 뒤 나치들은 개를 풀어놓았다 곧 걸음이 날랜 두 아이만 남았다.

“작은 아이가 뒤처지기 시작했다. SS들이 뒤에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곧 개들도 길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피 냄새가 그들을 미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두 아이 중 큰 아이가 속도를 늦추더니 작은 아이 손을 잡았다. …… 그렇게 둘이서 손을 잡고 몇 야드인가를 더 갔다. …… 그러다 사방에서 쏟아진 곤봉 세례가 두 아이를 쓰러뜨렸다. 두 아이는 함께 쓰러졌는데, 얼굴을 땅에 처박고 손은 영원히 꼭 잡은 채였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영원성의 동결이 (다시) 부분 대상으로서의 손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두 소년의 몸은 사라지고 있지만 꽉 움켜잡은 두 손은 첼시 고양이의 미소처럼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 <<헤겔 레스토랑>>

footnote
카테고리
Art Politics

앤 텔네스

퓰리처상을 수상한 WP의 만평가 앤 텔네스는 자신의 그림(오른쪽)이 거부당하자 WP를 과감히 떠났다. 제프 베이조스, 마크 주커버그, 샘 올트먼은 트럼프에게 돈을 바치고, 패트릭 순시옹은 곡필로 아부하며, 미키 마우스는 바짝 엎드려 절을 하고 있다. 리버럴의 시점에서 보는 권력관계란 이런 것.

존 하트필드의 1938년 그림(왼쪽)에는 그 관계가 역전되어 묘사된다.

카테고리
Film Quote Review

컴플리트 언노운

1960년대 중반 혹독한 투어 일정을 버티기 위해 그가 사용했던 대량의 암페타민에 대해 다룬 전기 영화는 어떨까?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는 멋진 모습만 보여주는 대신, 1966년 그가 겪었던 심각한 오토바이 사고와 이후 2년 동안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시간들에 대해 조명하는 것은 어떨까? 복음주의 기독교로 개종하고 가스펠 앨범을 발표했던 시기, 그리고 1971년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초정통파 유대교 하바드-루바비치 운동을 지지했던 그의 유대인 정체성에 대한 복잡한 관계도 탐구해볼 가치가 있다. 그의 Great American Songbook 커버곡들, 크리스마스 앨범, 그리고 대부분 실망스러운 영화 배우 및 감독으로서의 경력은 어떨까? 아프리카를 돕는다는 모호한 취지로 진행된 자선 노래 <We Are the World>에서 다른 스타들 사이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던 그의 퍼포먼스, 그리고 2000년대 내내 지속된 Never Ending Tour가 신의 명령에 따라 투어에 헌신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https://jacobin.com/2025/01/chalamet-bob-dylan-biopic-review

무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의 천재성을 찬양하는 전기 영화라면, 굳이 보고 싶지 않은 이런 삐딱한 마음.

카테고리
ETC Politics

텅 빈 제스처

두 가지 단상.

우리는 정치적 올바름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지만, 많은 경우 진심으로 그 가치를 신봉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비난을 피하거나 갈등을 피하기 위해 표면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이러한 가식적인 행동, 슬라보예 지젝의 용어로 ‘텅 빈 제스처(empty gesture)’는 결코 무의미하지 않으며, 인간 사회에서 필연적이고 불가피하다. 진정한 의미를 완벽히 실현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다시 말해 ‘진정성’에 기반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공동체 유지를 위해 이러한 상징적 행위가 필요하다.

헌법재판소법 제6조는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 경우 재판관 중 3명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사람을,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사람을 임명한다.1https://www.law.go.kr/법령/헌법재판소법/(20220203,18836,20220203)/제6조

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6명, 즉 국회에서 선출하는 3명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명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 행위는 텅 빈 제스처일 때 비로소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실현된다. ‘진정성’에 따라 반대하는 행위는 확실히 파국적이다. 여기서 임명은 그저 요구되는 것이다. 소시오패스가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 행동의 대부분은 상호 작용 자체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2애덤 모턴, 『잔혹함에 대하여』

footnote
카테고리
Politics

트럼프

트럼프 포퓰리즘은 두 축, 즉 이민자와 여성, LGBTQ+ 운동 등에 ‘위협’을 느끼는 피착취 노동자들과 디지털 봉건 영주들1야니스 바루파키스는 현대 디지털 경제와 플랫폼 자본주의에서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구글, 아마존, 메타, 애플 등 거대 기술 기업들을 디지털 봉건 영주(Digital Feudal Lords)로 명명한다. 중세 봉건제에서 농노가 영주의 토지에 긴박되어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유저(Users)는 플랫폼에 종속되어 자신의 데이터를 제공한다. 공공재여야 할 디지털 공간을 거대 기술 기업들이 사유재산처럼 다루면서 막대한 경제적 이익과 영향력을 얻는다.의 불완전한 연합에 기반하고 있고, 본질적으로 상충하는 계급적 긴장2https://www.independent.co.uk/news/world/americas/us-politics/elon-musk-h1b-visa-steve-bannon-b2672621.html을 내재하고 있다. 3스티브 배넌은 고임금 기술 산업 일자리를 미국인에게서 빼앗기 위해서 외국인 노동자에게 비자를 발급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다면 ‘당신의 얼굴을 찢어버릴 것’이라고 일론 머스크에게 경고했다. 일론 머스크와 비벡 라마스와미는 숙련된 외국인이 머스크의 기업을 포함해 높은 수준의 기술직을 채울 수 있도록 특별 H-1B 비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디지털 영역에서 기업의 무제한 자유를 허용하면서도, 사회적 문화적 영역에서는 인종차별 카드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강력한 권위주의적인 국가 통제를 강화하는 이중성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footnote
  • 1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현대 디지털 경제와 플랫폼 자본주의에서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구글, 아마존, 메타, 애플 등 거대 기술 기업들을 디지털 봉건 영주(Digital Feudal Lords)로 명명한다. 중세 봉건제에서 농노가 영주의 토지에 긴박되어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유저(Users)는 플랫폼에 종속되어 자신의 데이터를 제공한다. 공공재여야 할 디지털 공간을 거대 기술 기업들이 사유재산처럼 다루면서 막대한 경제적 이익과 영향력을 얻는다.
  • 2
  • 3
    스티브 배넌은 고임금 기술 산업 일자리를 미국인에게서 빼앗기 위해서 외국인 노동자에게 비자를 발급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다면 ‘당신의 얼굴을 찢어버릴 것’이라고 일론 머스크에게 경고했다. 일론 머스크와 비벡 라마스와미는 숙련된 외국인이 머스크의 기업을 포함해 높은 수준의 기술직을 채울 수 있도록 특별 H-1B 비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카테고리
Daylog

절절

오래된 임화 시집 속표지에 적힌 메시지

책장에서 오래된 시집만 골라서 재단 후 스캔하는 작업을 했다. 임화 시선집의 속표지에서 잊고 있던 메시지를 발견했다. 그래, 책을 선물 받던 날, 심장에도 뼈가 있고 슬픔을 참으면 그 뼈에 핏줄 같은 균열이 퍼지기도 한다는 걸 느꼈지. 한 해 후, 나도 다른 누군가에게 황망한 헤어짐을 선사했다. 보잘것없는 존재를 지탱하고 있던 세상의 모든 것이 끝도 없는 나락으로 무너져버리던 시절, 썩은 동아줄일지언정 카프 시인들, 임화, 그리고 김윤식의 <임화 연구>를 붙잡았던 거다. 누군가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 채 죽어가도, 금 간 뼈를 심장에서 들어내고, 죽어간 동지의 시신을 뜯어 먹으며 살아 남는 자도 있는 거지. 삶이란 게 그렇잖아. 하지만, 화로가 깨어지고 화젓갈도 버렸으니 남은 겨울이 따뜻할 리 있겠나.

카테고리
Music

실천으로서 음악

어느 다큐멘터리 소개 기사를 통해 접하게 된 이름 바버라 데인. 아마 살면서 한두 번은 들어봤을 텐데 전혀 기억에 없다.

1930년대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포크 기타리스트와 가수로 음악 경력을 시작한 데인은 시카고와 뉴욕의 블루스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이후 재즈와 전통 음악, 그리고 영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며 자신의 음악적 영역을 확장했다. 밥 딜런, 존 바에즈, 피트 시거 등 전설적인 음악가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고, 루이 암스트롱, 제인 폰다, 도널드 서덜랜드 등 문화적 아이콘과 함께 세계를 여행하며 공연했다.

그러나 그는 무대 위의 스타로 만족하지 않는다. 베트남 전쟁 시기 GI 운동에 참여했고, 쿠바 혁명 이후 쿠바에서 공연한 최초의 미국 예술가가 되었으며, 북베트남에서도 그녀의 목소리를 전했다.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 행동했고, 이는 FBI의 지속적인 감시와 같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았다.

음악이 과연, 단지 예술이기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그는 진실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초창기의 블루스 음악도 좋지만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늘어놓듯이 부르는 포크도 매력적이다. <나는 자본주의 체제가 싫다>는 곡을 듣다 보면 새삼 느끼게 되는데, 포크는 역시 감상하는 음악이 아니다. 듣고 깨닫는 음악, 함께 부르는 실천이다. 그는 혁명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