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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죽음

앞서 박씨 페이스북엔 14일 “박진성 애비되는 사람이다. 오늘 아들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황망하다. 가족끼리 조용히 장례를 치르려고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와 관련 박씨 측은 15일 “박씨가 무사한 것을 확인했다”며 사망설을 부인했다.

조선일보, 박진성 시인 부고글 소동에…미투 폭로자 측 “무책임을 넘어 2차가해”

박진성은 과거에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바 있다. (2017년 4월)

박진성 가짜 부고 트윗

이른바 ‘시인’은 왜 이렇게 금방 드러날 거짓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는 걸까? 어린 제자에게 행했던 추악한 행위들을 자신의 죽음으로 덮을 수 있다고 믿지만 차마 죽기는 두려웠던 걸까? 죄를 뉘우치고 피해자에게 사죄하기 보다는 왜 자꾸 다른 선택을 하는 걸까?

2016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피해자가 문단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동참하면서 성희롱 피해를 폭로하자 박진성은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진심을 담아 사죄하기를 원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는 남초커뮤니티 내에서 실명을 포함한 개인정보가 모두 노출된 채 ‘가짜 고발자’ 취급을 받았다. 애시당초 미투운동이 불편했던 남초커뮤니티는 가해자의 말을 일방적으로 받아서 피해자를 물어 뜯기 바빴다. 어린 피해자는 고립된 채 외롭고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다.

2021년 재판부는 드디어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박진성이 제기한 명예훼손 혐의를 기각하고 오히려 그가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너무나 당연한 판결이다. 특히 판결문에 피해자다움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한 점이 인상적인데, 그동안 ‘피해자답지 않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무고녀 취급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성희롱 피해를 당한 사람으로 보기 믿기 어려운 행동을 보였다고 하지만, 성희롱 피해를 당한 경우 마땅히 전형적인 모습이 드러나거나, 어떤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사고는 피해자다움의 행동 양식이 존재한다거나 그것이 부족해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단정해선 안 된다.” (노승욱 판사)

오마이뉴스, ‘박진성 무고 98년생 김현진’ 오명 지운 법원 “공익 목적의 폭로”

박진성의 자살쇼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피해자에게는 고통스러운 2차 가해로 작동한다. 부고와 관련한 소식들은 그 자체가 가짜뉴스이기도 하지만 사건에 대해 교묘하게 왜곡된 프레임을 가미하여 전파되고, 마치 무고한 시인이 고통받았던 것처럼 오인하게 한다. 아마도 그렇게 진실을 감추고 동정을 얻는 것이 그의 의도일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현직 대통령이 실형을 살고 있는 성범죄자인 안희정에게 화환을 보내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물론 그 뒤를 이을 차기 대통령도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윤석열은 이른바 ‘청년공약’으로 성폭력 특별법에 무고 조항을 신설하고 ‘거짓말범죄’를 근절하겠다고 약속했다. 믿기 힘들지만 21세기에 민주공화국의 대통령 후보가 내놓은 공약이다. 성폭력무고로 고소된 사례 중 유죄로 확인된 사례는 전체의 6.4%에 불과하지만1 한국일보, 시대역행하는 성폭력범죄 무고죄 공약 여전히 성폭력사건은 가해자에 앞서 피해자가 심판대에 오르며 유무형의 온갖 음해와 가짜뉴스의 불길을 견뎌야 한다.

안희정 사건의 피해자 김지은 씨는 항소심 유죄 선고 입장문을 통해 그간의 처지를 “화형대에 올려져 불길 속 마녀로 살아야 했던”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묘사했다.2『김지은입니다』, 166p. 그는 누가 쳐다볼지 누가 욕할지 몰라서 좋아하는 호떡조차 마음 편히 사먹을 수 없었다.

잠깐 서 있는 동안에 내내 누가 쳐다볼까 봐 두리번거렸다. 내가 이런 걸 사 먹어도 되는 건지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다. 한가로워 보일 것만 같았다. 그 생각 때문인지 속이 꽉 막혀 체하고 말았다. 호떡 하나 때문에 결국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김지은, 『김지은입니다』, “호떡을 사 먹어도 될까요?”, 241p.

‘시인’의 자살쇼가 화형대에 땔감을 보충할 때마다 피해자는 거세지는 불길을 피부로 견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