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어느 누구도 터너의 그림을 보고 19세기의 증기선을 다시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시커먼 선체(船體)와 돛대에서 펄럭이는 깃발, 사나운 바다의 위협적인 돌풍과 대결하는 투쟁의 인상 뿐이다. 마치 휘몰아치는 바람과 파도의 충격을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세세한 부분은 살펴볼 겨를이 없다. 그런 부분들은 눈부신 빛과 폭풍의 어두운 그림자에 의해 삼켜져버렸다.
E. 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494p. (16차 개정증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