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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

끝없이 과거의 기억을 되짚는다. 그때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 왜 그랬을까, 아무리 상황이 여의치 않았어도 이렇게 했어야만 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후회가 마음을 헤집는다.

바둑에서는 승패가 결정된 후에도 마주 앉아 승부처의 선택을 복기한다. 뒤늦게 발견한 패착을 아쉬워하며, 다른 수를 두었더라면 펼쳐졌을 또 다른 국면을 가늠해 본다. 패배를 기어이 직면하는 이유는 승부의 세계에는 다음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승자는 내일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오늘의 패자는 내일 승리를 거두기 위해 지난 선택을 되돌아본다.

삶에도 다음이 존재할까? 타임루프물이 주는 쾌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영원히 반복되는 성촉절의 굴레 속에서 선택을 바꿔가며 정답을 찾아 나간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성숙해지고, 겸손을 배우며, 끝내 사랑을 쟁취하거나 작은 혁명을 완수한다. 무한한 절망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호러 문법도 있겠으나…

만약 내 삶에도 그런 ‘다음’이 주어진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삶에 복기는 있어도 재경기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나온 길을 낱낱이 훑으며 아파하는 이 지독한 후회야말로, 깜깜한 내일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그래서 무의미할지도 모르는, 준비 아니겠나. 삶에 정답 따위가 있을 리 없고, 그저 약간이라도 다른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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