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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log ETC

一寸

슬라보예 지젝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고, 나는 거기서 회한이나 자기혐오에 고립되는 태도를 훌쩍 넘어서는 완전히 새로우면서도 평범한 경지를 느꼈다.

우리 부모님은 엄격하진 않으셨지만, 저를 깔보는 듯한 태도를 보이곤 하셨어요. 전 부모님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두 분은 어느 날 밤 병원에서 돌아가셨는데, 다음 날 아침 전화를 통해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이미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던 중이었죠. ‘다 처리가 된 건가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라고 말하고는 계속 일을 했습니다. 정말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았죠. 그렇다고 제가 그런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는 건 아닙니다.

결말을 알지만 언제 막이 내릴지 모르는 연극의 구경꾼은 낡은 걱정을 깜깜한 미래의 시공간에 내던지고 한눈을 팔 수밖에 없다. 그저 아침 하늘을 바라보며 비가 오지 않기를, 하염없이 맑기를, 바람이 불지 않기를, 사랑이 그저 달콤하기를, 오늘 하루 안온하기를 바랄 뿐이다.

나중에 죽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말 들을 때가 있었을 게지. 내일과 내일과 내일이 매일처럼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순간까지 답답한 걸음으로 기어오누나. 우리의 수많은 어제들은 바보들을 티끌 같은 죽음 길로 데리고 갔다. 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아. 인생은 그림자놀이, 한동안 무대에서 우쭐대고 안달하다 다시는 소식 없는 불쌍한 광대. 소음과 광란이 가득하고 아무런 뜻 없는 바보 이야기.1<맥베스> 5.5.17-27. 이상섭 역, 문학과 지성사, 2017, 674쪽.

footnote
  • 1
    <맥베스> 5.5.17-27. 이상섭 역, 문학과 지성사, 2017, 6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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