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 페넬의 <폭풍의 언덕>. 키가 2미터에 달하는 근육질의 백인, 프랑켄슈타인의 아름다운 괴물, 제이콥 엘로디가 히스클리프이다. 캐서린은 역시 호주 출신의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마고 로비, 에드거 린튼은 인도계 배우인 샤자드 라티프, 넬리는 홍차우가 담당했다. 이런 폭풍의 언덕이라니, 캐스팅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영화가 시작하면 절정을 향해 치닫는 듯한 남성의 신음이 들린다. 카메라는 교수대에 매달려 죽어가는 남자와 그를 지켜보고 있는 어린 캐서린과 넬리, 지저분한 군중을 교차해서 비춘다. 발기되어 있던 남자는 죽으며 사정을 한다. 군중은 환호한다. 이 불쾌하고 거북스러운 시퀀스는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펜넬 감독은 처음부터 노골적이다. 브론테가 절제된 언어 뒤에 숨겼던 외설적 진실, 더럽고 파괴적이고 유독한 사랑의 본질을 얘기하고 싶어 한다. 사랑은 아름다운 안식이 아니라, 나를 파괴하는 낯선 타자를 내 영혼으로 받아들이는 지독한 트라우마이며, 서로를 파멸시키면서도 멈출 수 없는 죽음 충동이다.
(캐서린이 넬리에게): 만약 모든 것이 사라지고 그만 남는다면, 나는 여전히 존재할 거야. 하지만 모든 것이 남고 그가 사라진다면 우주는 아주 낯선 곳이 될 거야.
진정한 사랑은 나의 온 세상을 파괴하고 들어오는 침입자이며, 그 파괴적인 유독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만이 진짜 사랑을 하는 것이다. 사랑의 윤리는 곧 혁명의 윤리이며, 지젝은 종종 이를 누가복음 14:26 예수의 메시지에 빗댄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다소 일관적이지 않고, 순전히 매혹 그 자체를 위한 것으로 보이는 특이성도 있지만, 펜넬의 시선은 매우 독창적이며, 그가 구사하는 영화적 문법은 극도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