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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Waite

당신의 세상에서 나는 아무런 의미가 없겠죠/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긴 하지만/ 무너져 내리는 건 내 마음이에요/ …/ 난 당신이 전혀 그립지 않아요 / 당신이 떠난 뒤로 말이죠/ 내 친구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어요

어릴 때, I ain’t missing you at all, 당신을 조금도 그리워하지 않고 있다고, 히스테릭한 진술을 반복하는 이 곡을 무척 좋아했다. 당시 내게는 그저 풋사랑의 아픔을 달래주는 노래였지만, 존 웨이트에게는 세 여인과의 복잡한 관계가 얽힌 곡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혼 절차를 밟던 아내, 뉴욕 이주 초기에 만났던 옛 연인, 그리고 당시 새롭게 만난 연인까지. 아픔과 희망, 종말과 새로운 시작이 교차하는 달콤쌉싸름한 감정 속에서 이 명곡이 탄생했다고 회상한다.1https://en.wikipedia.org/wiki/Missing_You_(John_Waite_song) 1984년에 제작된 뮤직비디오는 지금 보면 촌스럽기 그지없지만, 다행히 유튜브에서 예순일곱의 노신사가 된 그가 부르는 7년 전 어쿠스틱 라이브를 찾을 수 있다. 기타 하나에 의지하며 담담히 부르는 노래는 어느새 주름진 깨달음이 되어 공명한다. 사랑이란 죽어도 잊지 못할 사람을 끝내 잊었다고 수만 번 거짓말하며 완성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foot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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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실천으로서 음악

어느 다큐멘터리 소개 기사를 통해 접하게 된 이름 바버라 데인. 아마 살면서 한두 번은 들어봤을 텐데 전혀 기억에 없다.

1930년대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포크 기타리스트와 가수로 음악 경력을 시작한 데인은 시카고와 뉴욕의 블루스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이후 재즈와 전통 음악, 그리고 영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며 자신의 음악적 영역을 확장했다. 밥 딜런, 존 바에즈, 피트 시거 등 전설적인 음악가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고, 루이 암스트롱, 제인 폰다, 도널드 서덜랜드 등 문화적 아이콘과 함께 세계를 여행하며 공연했다.

그러나 그는 무대 위의 스타로 만족하지 않는다. 베트남 전쟁 시기 GI 운동에 참여했고, 쿠바 혁명 이후 쿠바에서 공연한 최초의 미국 예술가가 되었으며, 북베트남에서도 그녀의 목소리를 전했다.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 행동했고, 이는 FBI의 지속적인 감시와 같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았다.

음악이 과연, 단지 예술이기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그는 진실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초창기의 블루스 음악도 좋지만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늘어놓듯이 부르는 포크도 매력적이다. <나는 자본주의 체제가 싫다>는 곡을 듣다 보면 새삼 느끼게 되는데, 포크는 역시 감상하는 음악이 아니다. 듣고 깨닫는 음악, 함께 부르는 실천이다. 그는 혁명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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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불안, 죽음

핑크 플로이드의 <Julia Dream>.

핑크 플로이드의 멤버들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배경을 지녔지만, 로저 워터스의 경우 조금 결이 다르다. 그의 아버지는 교사였으며 공산주의자였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보긴 어렵지만, 그런 가부장이 만든 가정의 분위기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훗날 그의 곡에 스며든 반전과 사회 비판적 메시지의 근원을 탐색해본다면, 이 배경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사이키델릭이 지배하던 시대, 음악에 모든 것을 건 불온한 젊은이가 써 내려갔을 법한 곡이 바로 이 곡이다. 꿈속을 부유하듯 이어지는 모호한 상징들, 종잡을 수 없는 흐름 속에서도 마디를 이루는 시적인 가사. 어쿠스틱 기타의 리듬 위로 멜로트론이 뿜어내는 몽환적 음색의 선율이 데이비드 길모어의 차분한 보컬과 코러스를 이루다가, 끝내 불안과 죽음의 그림자에 잠식되듯 (혹은 저항하듯), 신경질적이고 불길한 노이즈 속으로 해체 (혹은 지양) 된다.

<The Dark Side of the Moon> 이후의 핑크 플로이드에 익숙한 나에게 이전의 앨범들은 완전히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빽판을 구하거나 알음알음 테이프를 복사해서 찾아 듣던 시절에는 꿈도 못 꿨던 호사가 지금은 가능하다. 그래서 어느덧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 되었다. 음악을 감상한다는 게 하나의 의식이자 체험이던 시대는 가버렸지만, 가끔은 한가하게 음악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