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Book

주체의 분리

블랑쇼에 관한 글을 읽다가, 데리다가 블랑쇼의 짧은 단편 《내 죽음의 순간 L’instant de ma mort》에서 일어나는 주체의 분리에 관해 주목하고 그에 관한 강연을 했음을 알게 되었다. 블랑쇼의 단편은, 1994년 노년의 블랑쇼가 50년 전의 자신(어떤 ‘젊은이’)이 1944년 까엥(Quain)에서 경험한 죽음의 순간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국내에는 아직 출판된 바 없는 듯하여, 영문판을 찾아보고 한국어로 옮겨 봤다.


나는 한 젊은 남자를 기억한다 — 아직 젊음을 간직한 한 남자. 죽음 자체에 의해, 그리고 어쩌면 불의(不義)의 오류로 인해 죽음을 면한 남자였다.

연합군은 마침내 프랑스 땅에 발을 디뎠다. 이미 패배한 독일군은 무의미한 잔혹함으로 허망한 저항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 대저택 — 사람들은 그것을 ‘성(城)’이라 불렀다 — 그 문이 조심스럽게 두드려졌다. 나는 그 젊은 남자가 문을 열어, 도움을 요청하러 온 낯선 방문객들을 맞이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날카로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모두 밖으로 나와!”

한 나치 장교가, 너무나도 유창한 프랑스어로 명령했다. 그는 가장 연로한 이들을 먼저 내보내고, 이어서 두 명의 젊은 여인에게도 같은 명령을 내렸다. “나와! 나와!” 이번엔 그의 목소리가 더욱 사나워졌다. 그러나 젊은 남자는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마치 사제가 제단으로 나아가듯 묵직한 걸음으로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장교는 그를 거칠게 흔들어 깨우며, 땅에 흩어진 탄피와 총알을 가리켰다. 분명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것이다. 이곳은 더 이상 평온한 터전이 아니라,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그 순간, 장교는 알 수 없는 언어로 목이 멜 듯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이미 한층 늙어 보이는 남자의 코앞에 탄피와 총알, 수류탄을 들이밀며 또렷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것이 네가 만들어낸 결과다.”
나치 장교는 부하들을 정렬시켰다. 그들은 규율에 따라 인간이라는 표적을 향해 조준했다. 그 순간, 젊은 남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적어도 제 가족만이라도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 그렇게 해서 아주 느리고도 긴 침묵의 행렬이 형성되었다. 먼저 아흔네 살의 고모, 그리고 비교적 젊은 그의 어머니, 이어서 그의 누이와 제수까지. 마치 모든 것이 이미 끝난 듯한 고요 속에서, 그들은 조용히 실내로 돌아갔다.

나는 알고 있다 — 나는 정말로 알고 있다 — 이미 독일군의 총구가 그를 겨냥하고, 최후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 순간, 그가 갑자기 놀라운 가벼움을 느꼈다는 것을. 그것은 일종의 황홀경이었을까? 그러나 결코 행복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환희? 아니면, 죽음과 죽음의 만남 그 자체였을까?

내가 그의 입장이었다면, 굳이 분석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그 순간 갑자기 무적이 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죽었으나 — 불멸한 존재. 어쩌면 그것은 황홀경이었을까. 그러나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통받는 인류에 대한 연민, 그리고 영원하지 않음에서 오는 기쁨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죽음과 은밀한 우정을 맺었다.
바로 그 순간 — 현실로의 갑작스러운 귀환. 가까운 곳에서 치열한 전투의 굉음이 폭발했다. 저항군 마키(Maquis)의 동지들이 그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알고 구출 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중위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그러나 독일군 병사들은 여전히 정렬된 상태로 멈춰 서 있었다. 그들은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침묵 속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병사들 중 한 명이 다가왔다. 그리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독일인이 아니다. 러시아인이다.” 그리고 묘한 웃음을 띠며 덧붙였다. “블라소프 군대다.” 그 병사는 손짓으로 그에게 사라지라고 했다.

나는 그가 여전히 가벼움의 감각 속에서 멀어져 갔다고 믿는다. 그는 결국 먼 숲, ‘히스 숲(Bois des Bruyères)’에 도착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익히 아는 나무들 사이에 몸을 숨겼다. 그렇게 빽빽한 숲 속에서 한참이 지난 후, 문득 현실 감각이 돌아왔다. 사방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농가들은 불타고 있었다. 불길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모든 것이 타오르고 있었다. 조금 후 그는 알게 되었다. 세 명의 젊은이들이 — 농부의 아들들로, 전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던 이들이 — 오직 젊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길 위에도, 들판에도 부풀어 오른 말들의 시신이 널려 있었다. 그것들은 이 전쟁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를 침묵 속에서 증언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던 것일까? 나치 중위가 돌아왔을 때, 그는 젊은 성주의 실종을 깨달았다. 그런데도 어찌 된 일인지, 분노와 격노가 성을 불태우는 쪽으로 향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성(城)’이었기 때문이다. 성의 정면에는 한 해가 새겨져 있었다. 1807. 그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을까? 그 해는 예나(Jena) 전투가 벌어진 해였다. 나폴레옹이 작은 회색 말을 타고 창밖을 지나갈 때, 헤겔(Hegel)은 그를 바라보며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세계정신을 목격했다.” 그러나 거짓과 진실이 뒤섞인 역사. 헤겔은 또 다른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랑스 군대가 자신의 집을 약탈하고 유린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헤겔은 ‘경험적 사실’과 ‘본질’을 구분할 줄 알았다. 그리고 1944년, 나치 중위는 농가들이 받을 수 없었던 ‘존중’ 혹은 ‘고려’를 이 성 앞에서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은 철저히 수색을 했다. 그들은 금품을 약탈했다. 별채에 있는 ‘고층 방(la chambre haute)’에서 몇 가지 문서와 두꺼운 필사본을 발견했다. 그것에는 어쩌면 전쟁 계획이 담겨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침내, 그들은 떠났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있었다. 그러나 성만은 남아 있었다. 귀족들은 살아남았다.

그 순간부터, 젊은 남자는 아마도 불공평함의 고통을 겪기 시작했을 것이다. 더 이상 황홀은 없었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는 단 하나 — 심지어 러시아인들의 눈에도 그는 귀족 계층에 속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이것이 전쟁이었다.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학살의 잔혹함 속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총성이 아직 울리지 않았던 바로 그 순간까지도, 그가 느꼈던 가벼움의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정확히 번역할 수 없다. 삶에서 해방된 감각일까? 무한이 열리는 순간일까? 그것은 기쁨도, 고통도 아니었다. 두려움이 사라진 상태도 아니었다. 어쩌면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한 걸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안다. 아니, 나는 상상한다. 그 분석할 수 없는 감각이 그의 남은 삶을 변화시켰으리라는 것을. 마치 그 밖의 모든 죽음이, 이제 그의 내면에 있는 죽음과 맞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처럼. “나는 살아 있다. 아니, 너는 이미 죽었다.(Je suis vivant. Non, tu es mort.)”


훗날, 그는 파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말로(Malraux)를 만났다. 말로는 그에게 자신이 포로가 되었지만, 신분이 발각되지 않은 덕분에 탈출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한 원고를 잃어버렸다. “그건 예술에 대한 단상들에 불과했어. 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지. 하지만 잃어버린 원고는 절대 다시 같은 것이 될 수 없어.” 폴랑(Paulhan)과 함께 원고를 찾아보려 했지만, 그것은 결국 허사였다.

그러나 무엇이 중요한가. 이제 오직 가벼움의 감각만이 남아 있다. 그것은 곧 죽음 그 자체이거나,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나의 죽음이라는 순간이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