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서 걸려 온 전화 한 통. 수화기 너머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오늘따라 아버지가 방긋방긋 웃으신다며, 직접 숟가락을 들고 식사를 하시는 모습이 너무 고와 소식을 전한다고 했다.
몇 해 전 일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아직 떠듬떠듬 말할 수 있을 때, 할 말이 있다며 전화하셨다. 무슨 일일까 덜컥 걱정하며 찾아갔더니 갑자기 펑펑 울면서 내게 사과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과거 나에게 몇 차례 손찌검했던 일이 떠올랐던 것 같았다. 당연하게도 자식을 사랑했겠지만 그 사랑을 건네는 법을 몰라 서툴렀던 세월. 삶이 잔뜩 엉클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고집스럽고 강인했던 아버지가 그렇게 약해져 있는 걸 보니 나도 슬펐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손을 잡아드렸다. 저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니까 다 잊으시라고. 좋은 기억만 떠올리시라고. 빈말이 아니라 진심을 담았다. 잘못한 걸로 따지면 내가 더 많이 했다. 내가 저지른 수많은 잘못을 뻔뻔스럽게 잊었듯이, 아버지도 그렇게 잊을 자격이 있다.
방긋방긋 웃었다는 표현이 고마웠다.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미흡했던 것은 다정함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저 정당하게 자신과 자식을 사랑했지만 삶이란 늘 뭔가 부족하기 마련이다. 그런 결핍은 부모가 아니라, 친구도, 선생도, 연인도, 신도, 세상 누구도 채울 수 없는 것이다. 타인의 결핍에서 자신의 과오를 찾는 일은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었다.
여태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는 아기처럼 방긋방긋 웃는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술을 마시면서 살다가 뇌졸중으로 끝내는 삶을 동정할 필요 없다고 여겼지만, 내 삶이라고 뭐가 다르겠냐. 지금껏 아버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무신경하고 냉정한 태도를 보여왔던 게 문득 후회스럽다. 지금 스스로가 죽도록 혐오스럽고, 하늘이 갑자기 무너져 눈앞이 캄캄하고, 무엇이라도 붙들고 미친듯이 매달리고 싶은 복잡한 심경이라서가 아니라, 기저귀를 차고 방긋방긋 웃는 아기 같은 존재를, 눈물을 펑펑 쏟으며 떠듬떠듬 미안하다고 사과하던 존재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