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 디즈니 (1901~1966)
12월 15일 사망한 영화인들 중 월트 디즈니가 눈에 걸린다. 그는 1966년 12월 15일 폐암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주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착한 할아버지로 그려지고 있지만, 예술가들에 대한 착취, 노동운동 탄압, 마피아와의 밀거래, FBI와의 결탁으로 요약되는 추악한 괴물이 월트 디즈니의 진면목에 가깝다.
그는 노골적인 반공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였다. 매카시즘 광풍에 휩싸였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로버트 테일러, 로버트 몽고메리, 조지 머피, 게리 쿠퍼, 잭 워너, 루이스 마이어 등과 함께 의회반미활동위원회(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 HUAC)에 우호적인 우익세력의 선봉에 섰으며, 찰리 채플린*1을 비롯하여 수 많은 영화인들, 심지어는 자기 밑에서 일하던 직원인 데이비드 힐버맨*2까지 공산주의자 딱지를 붙였다. 채플린은 외국으로 추방되었고 몇몇 영화인들은 수모 끝에 자살하거나 감옥살이를 해야했다. 1951년까지 블랙리스트에 오른 200여명의 영화인들은 이제 와서 몇마디 사과의 말로 덮어 두기에는 너무 잔혹한 고통과 치욕을 감내해야 했다.
동시에 악독한 자본가였다. 그는 매일 밤 직원들이 사용하는 연필 수까지 검사했으며, 직원들은 화장실에 가거나 물을 마시러 나갈 때, 심지어는 연필을 깍으러 나갈 때도 펀치카드를 찍어야 했다. 이렇게 계산된 시간을 가지고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고도 자기가 참여한 작품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리하여 1941년에는 아서 배비트*3, 빌 티틀라*4, 존 허블리*5, 모리스 노블*6 등 당대의 아티스트들이 파업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들의 요구는 철저하게 무시되었고 교묘한 방식으로 보복이 가해졌다. 해고된 아서 배비트는 법원의 판결로 다시 복직했지만 디즈니의 노골적인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곧 회사를 떠나야 했다. 디즈니는 그가 관련을 맺고 있던 마피아의 힘을 빌어 노조 지도자들에게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디즈니가 이룩한 권력은 오늘날 세계 최대의 배급력, 흡수와 통합으로 살찌운 거대한 포식자의 권력이다. 그것은 꿈이나 희망이라는 단어보다는 폭력적인 착취와 더러운 거래, 기만이라는 단어에 가까운 재질로 구축되어 있다.
- 주1 채플린은 미키마우스의 모델이기도 했다.
- 주2 그는 '밤비'를 만들어낸 사람이다.
- 주3 아서 배비트가 창조한 대표적인 캐릭터는 '구피'다.
- 주4 빌 티틀라는 '덤보'를 만들어 냈다
- 주5 존 허블리는 '미스터 마구'를 만든 사람이다.
- 주6 모리스 노블은 '벅스 버니'의 아버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