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서 고양이와 동거하면서 가장 번거로운 일 중 한 가지가 화장실 청소다. 고양이에게는 배설물을 숨기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고, 먼 조상이 건조한 지역 출신이라서 그런지 본능적으로 모래를 좋아한다. 그래서 도시에서 고양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모래를 사용하는 고양이 화장실이 필수다. 게다가 워낙 깔끔 떠는 족속이라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화장실은 싫어하므로 자주 청소해줘야 한다. 화장실이 지저분하면 화장실 입구나 구두 등에 실례를 하기도 한다. 팔불출스러운 소리긴 하지만 동거묘인 토미와 어구리는 유독 깔끔을 떠는데, 응가하고 나서는 베란다 창문턱에 올라가 서로의 똥꼬를 깨끗이 핥아 주는 낯 뜨거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모래 값이야 저렴한 편이므로 돈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일하는 화장실 청소 만큼은 점차 성가신 일이 된다.
고양이란 족속은 결코 강압적인 방법으로 길들여지는 족속이 아니다. 그들에게 좌변기를 들이대고 요게 너희들의 화장실이다라고 가르치는 것은 씨알도 안 먹힌다. 속임수를 동반하는 교묘하고도 점진적인 방법으로 그들이 좌변기를 화장실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해야 한다. 말해 놓고 보니 그럴싸하지만, 솔직한 내 느낌을 말하자면, 완만하긴 해도 ‘선택권의 박탈’에 다름 아닌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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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11일: 베란다에 있던 모래 화장실을 좌변기가 위치한 욕실의 바닥으로 옮겼다. 이 단계는 비교적 쉽게 적응했다. 장소야 어쨌든 그들이 좋아하는 모래가 거기 있으니까. 바로 당일부터 적응하였으나 일주일 동안 그렇게 놓아 두었다. 그들은 욕실을 행복한 배변의 공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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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18일: 마트에서 구입해 온 쌀함박에 모래를 담아 변기 안에 넣어 두고 고양이 화장실을 치워버렸다. 중간 크기의 쌀함박은 신기하게도 좌변기에 딱 들어 맞는다. 쌀함박 바닥에는 녀석들의 응가 한 덩이를 묻어 두었는데, 냄새로 쉽게 화장실을 찾으라는 배려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건 다소 오바였던 것 같다. 고양이들이 자기 응가 냄새 따위로 화장실을 구별하는 건 아닐 거다. 기분 좋게 파헤칠 수 있는 모래만 있으면 된다. 역시 예상대로 적응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토미와 어구리 둘 다 한 동안 욕실을 배회하다가 좌변기 위로 폴짝 뛰어 올라 모래를 신중하게 확인하고는 볼 일을 보았다. 다만 토미에게는 모래를 심하게 파헤치는 습성이 있었기 때문에 욕실 바닥이 매우 지저분해지는 걸 감수해야만 했다. 수시로 청소를 해야 했으며, 마른 걸레로 물기까지 없애야 했다. 전에 쓰던 고양이 화장실은 깨끗이 닦아서 베란다에 두었고, 가끔 놀이터로 이용할 뿐 그 곳에 실례를 하지는 않았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배변자세는 개묘차가 있는 것 같다. 어구리는 어색한 자세로 뒷발을 쌀함박의 모래에 담그고 볼 일을 봤고 토미는 시트에 걸터 앉아서 볼 일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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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27일: 박스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가운데 고양이 앞발이 하나 들어갈 정도의 구멍을 뚫어서 쌀함박 위를 덮고 변기 시트를 내려두었다. 그 위에는 유아용 시트를 하나 더 올려 두었다. 녀석들은 자기 화장실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에 몹시 당황하다가 구멍으로 앞발을 집어 넣어 몇 번이고 모래의 존재를 확인했다. 이 단계는 배변 자세를 잡는 단계였다. 시트 위에서 어떤 자세로 앉아야 응가가 무사히 구멍을 통과하여 안전한 모래로 안착하는지 연습하면서 좌변기 위에서 자세 잡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토미는 조준 실력을 타고나서 단번에 구멍으로 골인시켰지만 워낙에 의심이 많은지라 굳이 앞발을 집어 넣어 잘 들어갔는지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 간혹 앞발에 응가가 묻어 방바닥에 독특한 발자국을 남기기도 했다.
어구리는 조준이 서툴러서 애를 먹었다. 처음 몇 일은 구멍 근처에 싸 놓고 난감해 했다. 그걸 앞발로 구멍 안으로 밀어 넣으려다가 토미와 마찬가지로 독특한 흔적을 집안 여기저기에 남기기도 했다. 그렇게 일주일쯤 반복하다보니 어느샌가 자세가 잡혀서 비교적 실수없이 구멍으로 골인시킬 수 있었다.
솔직히 다음 과정보다 이 과정이 더 까다로웠던 같다. 판지가 오줌이나 응가로 더럽혀지면 바로바로 갈아줘야 했고, 응가 묻은 앞발로 방바닥이며 이불이며 밟고 다니는 바람에 매우 부지런해야 했다. 사람 뿐 아니라 고양이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어느 정도 자세가 잡혔다고는 해도 좌변기에 쪼그려 앉아 조그만 구멍에 똥꼬를 맞춰야 하는 자세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편안한 자세는 아니다. 특히 모래를 파헤치는 습성이 강한 토미에게는 특히나 불만이었을 거다. 녀석의 저항은 배변을 참는 행동으로 시작되었다. 집안 구석구석을 기웃거리며 몰래 꼬불쳐둔 모래라도 있는지 장판을 긁어 본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마징가귀를 한 채 변기 위로 뛰어 올라서는 황급히 변을 본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녀석에게는 패배만이 기다리고 있고 녀석은 조금씩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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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18일: 판지는 그대로 둔 채 모래가 들어 있던 쌀함박을 치워버렸다. 고양이들은 구멍 아래에 모래 대신에 물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무척 당황한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몇 주 동안 구멍 아래의 모래 보다는 구멍 자체에 더 많은 신경을 써 왔다. 그들의 관심은 어떻게 해야 구멍에 묻지 않게 볼 일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구멍의 힘이랄까. 바로 이 구멍은 고양이들로 하여금 구멍 아래의 존재를 잠시나마 잊게 만든다. 때문에 이 단계는 이전 단계보다 오히려 수월하게 진행된다. 그들은 여전히 소극적인 저항을 해 보지만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인정하고는 꺼림칙한 그 구멍에 똥꼬를 겨냥한 채 볼일을 보는 것이다.
초반에는 토미가 볼 일을 본 후 욕실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물이 뚝뚝 떨어지는 앞발을 핥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는데, 점차 그런 모습은 볼 수 없게 되었다. 전생에 윌리엄 텔이었던 토미는 응가 뿐 아니라 오줌도 깔끔하게 구멍을 통과시켰다. 어구리는 토미 보다는 늦게 적응했지만 토미 보다 훨씬 물을 싫어하였기에 앞발을 담가보는 모험 따위는 감행하지 않았다. 대신 변기 시트를 박박 긁어댔으며, 조준력이 다소 부족하여 간혹 오줌으로 판지를 적시곤 했다.
모래를 담았던 쌀함박의 행방이 궁금한 분들을 위해 덧붙인다. 쌀함박은 깨끗이 닦아서 잘 보관하고 있으며, 때때로 귀한 손님이 방문하면 정성껏 과일을 씻어 대접하는 용도로 활용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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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일: 구멍을 좀더 크게 만들었다. 앞발 두 개 정도가 들어갈만한 넓이로 넓혔다. 이 단계는 구멍의 힘에서 자세의 힘으로 이행하는 단계라 부르고 싶은데, 구멍이 넓어질수록 구멍의 힘은 약해지고 자세의 힘이 작용한다. 어떻게 하면 응가를 구멍으로 통과시킬 수 있는지 고민하는 단계는 끝났으며, 그들은 이미 자신만의 자세를 익히고 있다. 그들에게 배변은 더 이상 구멍과는 상관없으며 중요한 것은 늘 걸터 앉는 위치에서의 자세다. 그런 탓인지 이 단계 역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적응했다.
다만 전 단계에 비해 물이 잘 보이기 때문인지 배변 전과 후에 결과물을 관찰하는 시간이 늘었다. 배변 전에는 맑은 샘물을 내려다 보며 누가 내 응가를 옮겼을까, 하고 잠시 묵상에 잠긴다. 시트 위를 몇 차례 망설이듯 돌다가 때가 되면 자세를 잡고는 욕실 문 밖에서 몰래 자기를 훔쳐보는 변태 동거인을 가볍게 무시한 채 아랫배에 힘을 준다. 볼 일이 끝나면, 맑은 샘물을 무심히 유영하는 자신의 응가 덩어리를 한참 동안 들여다 보곤 한다. 토미는 간혹 앞발을 할짝였고, 어구리는 시트를 긁어댔다. 그래도 10월 중순 경 토미가 바이러스성 눈병에 걸려 병원에 다녀오느라 신경이 날카로와졌을 때 한 번을 제외하면 엉뚱한 곳에 실례를 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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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12일: 2주 간격으로 구멍을 조금씩 넓히다가 드디어 판지를 치워버렸다. 모든 것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다. 녀석들은 이미 오래 전에 이놈의 집구석에 모래란 없으며 응가를 굉음과 함께 어디론가 깜쪽같이 사라지게 만드는 마법의 샘물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빈 필름통을 이용해서 물까지 내리게 한다고도 하는데, 시도해 보지는 않았다. 여튼 동거묘들은 나와 같은 좌변기에서 용변을 보았고, 퇴근 후에 변 상태를 확인하고 물을 한 번 내려주면 되었다.
다만 판지를 치우고 나서 본격적으로 응가가 어디로 가는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굉음이 나면 샘물이 빙빙 돌다가 어디론가 사라진다는 깨달음을 얻은 녀석들은 내가 변기 근처로 가면 쪼르르 달려와서는 좌변기에 턱을 괴고 무시무시한 소리에 움찔움찔하면서도 응가의 향후 행방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한다. 응가가 사라지고 다시 맑은 샘물이 차 오르면 변기로 뛰어 올라 앞발로 슬쩍 찰싹여 보기도 했다. 앞발로 찰싹이면 물이 내려가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적응훈련이 끝나고 몇 개월이 지났다. 지난 달 쇼핑 나갔다가 화분을 두 개 사왔다. 홍콩야자와 아레카야자였다. 식물이라고는 냉장고 안의 김치 뿐인 집에 처음으로 사오는 화분이라 기대가 컸다. 아침에 옥상에 올려 두고 틈틈히 물이나 주면서 점차 수를 늘려가려는 마음이었는데, 잠시 탁자에 둔 채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나와보니 녀석들이 사고를 쳐 놨다. 아레카야자는 잎사귀가 질겅질겅 씹혀 있고, 홍콩야자는 온통 흙이 파헤쳐져 있었다. 홍콩야자의 둥근 잎사귀에도 선명한 이빨자국이 나 있었지만 탁자와 방바닥에 흩어져 있는 흙에 비하면 사소한 사고였다. 버럭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놀라서 책장 위로 피신했던 녀석들이 얄미울 정도로 무관심한 표정으로 내려다 보고 있는 가운데 투덜대며 흙을 치웠다. 하긴 녀석들에게 무슨 죄가 있으랴.
그 사건 이후 나는 어구리가 변기 시트를 긁어 대는 소리와 토미가 좌변기 위에서 ‘샘물’을 찰싹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홍콩야자 화분이 생각났다. 설령 그게 천연 모래가 아닌 벤토나이트 모래라고 해도 뭔가 파헤치고 배변하는 즐거움을 내가 빼앗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렇게 따지자면 집 밖으로 나갈 자유를 강탈한 것부터가 문제지만, 그건 그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우겨 볼 수라도 있다. 하지만 좌변기는? 그건 순전히 내가 편하자는 것 아닌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한 가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베란다에 처박혀 있던 고양이 화장실을 다시 꺼내 남아있던 모래를 부어 보았다. 물론 여전히 욕실에는 그들이 6개월동안 사용해 온 좌변기가 있으며 발톱을 긁어서 헤어진 유아용 시트까지 얹혀져 있다. 녀석들에게 선택권을 줘 보기로 한 것이다.
좌변기에 적응하는데 3개월이 걸렸지만 다시 모래로 돌아오는데에는 단 3초가 걸렸다.
고양이의 수명을 20년으로 잡고 한달에 2만원 어치의 모래를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480만원 정도의 비용이 날아간 셈이다. 게다가 작년 3개월 동안 이불에 쉬라도 할까 전전긍긍하던 스트레스며 욕실의 물기까지 깨끗이 닦아내던 노력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리니 몹시 허탈했다. 하지만 즐겁게 모래를 파헤치며 뒹구는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그런 억울한 기분 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고, 베란다 창문턱 위에 올라가 서로의 똥꼬를 핥아 주는 정겨운 모습을 다시 보니 베란다 문 앞에 자글자글 밟히는 모래들 정도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