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view: The Texas Chainsaw Massacre (2003)

토브 후퍼가 1974년에 단돈 14만 달러로 만든 원작에 마이클 베이와 마르커스 니스펠이 920만 달러를 들여 가한 변화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족 구성의 변화다. 원작의 괴물가족은 남성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유일한 여성인 할머니는 죽어서 미이라가 되어 있다. 이 가족이라는 괴물의 만찬에 초대된 주인공 셀리가 다죽어가는 가부장의 해머에 거듭해서 머리를 빗맞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공포스러우면서도 의미심장한 폭력이다.

반면 리메이크에는 자식이 얼마나 소외된 존재인지 장황하게 변호하는 어머니를 비롯하여, 비뚤어진 모성애를 가진 며느리가 추가된다. 또 , 가족의 범죄에 반대하는 소년과 빼앗아 온 아기가 있지만, 이들은 뻔뻔스럽게 유치한 헐리우드식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어정쩡하게 가족의 경계(또는 외부)에 존재한다. 내 생각에는 최악의 변화이다. 켄 로치의 영화를 디즈니가 리메이크한 것과 같다.
희생자 청년들에겐 각각의 -- 심오한 -- 역할이 있다. 제시카 비엘(에린 역)은 탱크탑을 가득 채우는 ‘가슴’역이다. 때문에 이 영화에서 가장 의미 있는 설정은 제시카 비엘이 저주스런 저택에서 도망쳐 나올 때 느닷없이 쏟아지기 시작한 폭우다. 소방호스로 뿌려대는 저 폭우야말로 꽉 끼는 탱크탑과 청바지를 입은 제시카의 몸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인 제시카의 “가슴”을 가장 잘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여배우 에리카 리어슨(페퍼 역)은 ‘비명’이다. 실제로 스크린 테스트에서 어찌나 크게 비명을 질렀는지, 같은 건물에 있던 다른 파트의 사람들이 누군가 습격당한 줄 알고 경찰에 신고하는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단다. 과연 영화 속에서도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데, 관객들은 뭔가 보기도 전에 그녀의 비명소리에 놀라고 마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장면에서는, 미숙한 연기와 무성의한 연출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시카를 비롯한 나머지 젊은이들이 에리카 때문에 놀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두 명의 여성 캐릭터는 운이 좋은 편이다. 불행한 세 명의 남자들은 냉동창고에 걸려 있던 ‘고기’들과 똑같은 비중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저 모두 어딘가에 내걸린 채 잔인하게 도축된다. 심열을 기울여 장시간 동안 정성을 쏟아 만들었을 그들의 창자를 비롯한 내장들, 시뻘건 살덩이들이 등장하는 1분 가량은 그나마 한국의 극장에서는 볼 수조차 없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제시카 비엘의 탱크탑이 폭우에 젖는 순간 말고도, 뭐랄까 약간의 전율이 흘렀던 순간이 있긴 했다. 바로 보안관으로 출연한 리 어메이가 땅에 엎드린 청년들에게 훈계를 할 때가 그랬다. 그러니까, 7월 19일 새벽의 총기난사 소식을 접하고, 스탠리 큐브릭의 <Full Metal Jacket (1987)>에서 영화 전반부 내내 “You maggots”, “You little scumbag”따위의 주옥같은 욕설을 입에 달고 있던 그를 화장실에서 총으로 쏴죽이는 빈센트 도노프리오의 광기어린 눈빛이 즉각적으로 떠올랐었기 때문이다*1. 같은 날 심야의 CGV에서 리 어메이가 젊은이들을 향해 고래고래 윽박지르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자, 매트릭스 안에서 같은 고양이를 두 번 본 네오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리 어메이는 16년 전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 내내 걸쭉한 욕설을 지껄이다가 처절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는 저 괴상한 가족 중 유일하게 처벌받는다. 차로 치고 나서, 두 번이나 깔아 뭉갠다. 약간 심하게 말하자면, 토비 후퍼의 역사에 길이 남을 이 위대한 호러를 가장 형편없게 리메이크하는 방법은 가족 중에 욕 잘하는 보안관을 포함시키고 그를 고리타분한 보수적 가치나 권력에 대한 환유인 것 처럼 적절히 포장하고, 관객들이 그를 충분히 미워하게 되었을 때 차로 깔아뭉개 죽이는 거다. 마이클 베이와 마커스 니스펠이 바로 그렇게 했다.
  • 주1 나는 이 영화를 김일병의 총기난사 사건이 있던 날 심야에 처음 보았고, 이 글은 다음 날 쓰다가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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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아,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군요. 필모를 살펴보니깐, 윌러드, 프라이트너 등등. 거기다가 진짜 참전군인이었군요. 말씀대로, 그 캐릭터는 리메이크판에서 유일하게 빛나죠. ㅎㅎ
  2. 원래는 풀메탈자켓에 군사고문으로 섭외된 것인데, 연기도 너무 잘해서 아예 배우로 출연하게 된 거라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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